최근 북한 경제가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무기 판매와 파병, 중국과의 교역 확대, 국제 제재 우회가 맞물리면서 김정은 집권 이후 최대 호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뜻밖의 경제 성공 사례”라고 표현했다.
택시 앱 부르고 QR 결제…달라진 평양
평양의 고층 건물들이 대동강을 따라 늘어서 있다. 타스통신
코로나19 이전 북한을 100차례 이상 방문했던 호주 관광업자 로완 비어드는 최근 평양을 다시 찾은 뒤 “도시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WSJ에 전했다.
과거에는 택시를 잡기 위해 한참을 기다려야 했지만, 이제는 스마트폰 앱으로 차량을 호출하고 실시간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QR코드 결제와 음식 배달 서비스, 모바일 결제 시스템도 보편화했다. 거리에서는 중국산 전기차와 수입 차량을 쉽게 볼 수 있고 반려동물 상점과 인터넷 게임카페, 자동차 전시장도 등장했다.
차량 통행량이 늘면서 북한은 최근 무단횡단, 운전 중 흡연, 반려동물 목줄 미착용 등을 금지하는 교통법규 개정 내용을 조선중앙TV를 통해 홍보하기도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안북도에 있는 온실 농장을 시찰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AFP연합뉴스
북한은 최근 평양 최대 규모 병원과 대형 온실단지, 해변 관광단지 등을 완공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추진하는 ‘20×10 정책’에 따라 향후 10년간 매년 20개 시·군에 공장과 의료시설, 문화시설을 건설할 계획이다. 북한은 지난해 평양에만 신규 주택 1만 가구를 공급했다. WSJ에 따르면 이는 같은 기간 미국 로스앤젤레스나 시카고보다 많은 수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 경제 성장률은 3.7%에 달한다. 8년 만의 최고 성장률이다.
러시아 전쟁이 바꾼 북한 경제
2024년 6월1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금수산 영빈관에서 열린 공동 문서 서명식에서 서명하고 있다. 타스통신
이런 변화는 불과 몇 년 전과는 극명하게 대조된다.
북한은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봉쇄로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렸다. 당시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 알렉산드로 마체고라가 러시아 국영 통신사 인테르팍스와의 인터뷰에서 에너지 부족으로 탄광 생산이 중단됐고 밀가루·식용유·설탕 등 기본적인 식료품조차 구하기 어렵다고 증언했다. 김 위원장은 이례적으로 경제 정책 실패를 인정하며 공식 석상에서 눈물을 보였다.
전환점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었다. 김 위원장은 2023년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고, 이듬해 푸틴 대통령은 평양을 찾아 사실상의 군사동맹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11월 쿠르스크 지역에서 러시아와 북한 군인들이 지뢰 제거 훈련에 참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후 북한은 러시아에 포탄과 미사일 등 각종 무기를 대규모 공급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은 북한이 무기 판매로 100억달러(약 13조7000억원) 이상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산했다.
북한은 러시아에 1만5000명 이상의 병력도 파견한 대가로 현금뿐 아니라 군사 기술과 전략 자산, 에너지와 각종 건설 자재까지 제공받았다.
중국과의 교역도 최근 8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늘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올해 첫 해외 순방지로 북한을 선택한 것은 양국 관계의 밀착을 보여주는 상징적 대목이다.
북한 해커 조직들은 중국을 거점으로 활동하며 암호화폐 거래소를 해킹해 10년간 60억 달러 이상의 외화를 확보하며 경제를 뒷받침했다.
‘돈주’ 누르고 국가 통제 강화···멀어지는 비핵화
2019년 6월30일 판문점 비무장지대(DMZ)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회담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경제력을 회복한 김정은 정권은 이를 빌미로 내부 통제력을 다시 강화하고 있다. 과거 밀수품과 암시장에 의존하며 성장했던 ‘돈주(신흥 자산가)’ 계층을 누르기 위해 국영 상점과 약국을 늘리고 국산품 진열을 의무화했다. 농촌에 공장을 신설해 밀수업자들을 제도권 일자리로 흡수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 내부 소식통 네트워크를 보유한 이상용 데일리NK 데이터연구센터장은 WSJ에 “무기 판매와 해킹을 통해 벌어들인 자금 일부가 주민들에게도 흘러 들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호황이 북한 주민 전체의 풍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유엔에 따르면 북한 인구 약 2600만명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여전히 영양 부족 상태에 놓여 있다. 북한 경제 규모는 여전히 미국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결국 경제 성장의 과실이 민생 개선보다는 김정은 정권 핵 독점 체제와 전시 군사 경제를 지탱하는 자금줄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더 큰 문제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체제의 무력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앞장서 북한과 군사·경제 협력을 확대하면서 국제사회 압박은 힘을 잃었다. WSJ는 “핵 프로그램이 외부의 군사적 압박을 막아주는 방어벽 역할을 해준 덕분에 김 위원장이 안심하고 경제에 자원을 투입할 수 있었다”며 “미국이 그동안 협상 카드로 써온 ‘제재 완화’나 ‘경제 지원’의 매력도가 떨어지면서, 북한 비핵화에 대한 희망은 더욱 멀어지게 됐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