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 올린 ‘교사 정치기본권’ 논의
부당한 공격 막아 줄 ‘울타리’는?
교사노동조합연맹 소속 교사들이 제45주년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달 1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교사 시민권 회복과 교원 정치기본권 보장을 알리기 위한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강윤중 기자
저는 교육감 선거를 볼 때마다 이상한 느낌을 받습니다. 원래 교육감 후보는 특정 정당에 소속되면 안 되고, 정당도 교육감 선거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번 봅니다. 파란 옷을 입은 ‘민주진보후보’와 빨간 옷을 입은 ‘보수후보’의 대결을요. 그와 반대로 현장 교사들은 과도한 ‘정치적 중립’ 요구와 트집잡기 민원에 숨이 막힙니다. 그런 점에서 솔직히, 교육감 후보들이 괘씸해 보일 때도 많았습니다.
이런 불평등이 조금은 완화될 수도 있겠습니다. 교사노조연맹이 이번 6·3 지방선거 교육감 당선자 공약을 분석한 결과, 당선된 16명 중 12명이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거든요. 목소리를 잃은 교사들의 숨통이 조금이라도 트일지 주목되는데요. 이 약속, 흐지부지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퇴근 후 좋아요’도 눈치
현행 국가공무원법과 공직선거법 등은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활동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범위가 넓고 두루뭉술하다는 것이죠. 학교라는 공간의 특성상 교사는 다른 공무원보다 더 큰 압박을 받고요. 심지어 퇴근 후 정치 관련 SNS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행위까지 정치 활동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교사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정치적 금치산자’라고 자조해요.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학생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사회 이슈를 두고도 제대로 된 토론이 이뤄지기 어렵습니다. 12·3 불법계엄 당시 일부 학교는 학생들이 쓴 대자보를 내리라고 강요했습니다. 계엄 다음날 특별수업을 진행한 중학교 역사교사 한유라씨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정치적 이슈를 다뤘다는 것 자체만으로 특정 정치 성향에 편중되는 교육을 하는 것 아니냐는 공격이 많이 들어온다”고 했어요.
이런 침묵은 해롭습니다. 건강한 토론이 실종된 교실에서는 극우 등 극단적인 주장들이 퍼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죠. 교육의 질도 떨어지고요. 교사 박범철씨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갈등 해결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 교육이 이뤄지지 않으니 더 단선형 입시 위주 교육에 머물게 됐다”고 했어요. 반면 해외 주요국들은 교사의 정치 기본권과 교실 내 자유로운 토론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국내 논의도 진전될 것으로 보여요. 이재명 정부가 교원의 정치기본권 확대를 국정과제로 두고 있고, 더불어민주당도 ‘공무원·교원 정치기본권 확대 TF’를 이달부터 재가동할 예정입니다.
씁쓸한 ‘참교육’ 열풍
법으로 정치기본권만 보장하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앞서 살펴봤듯, 현장 교사들의 피부에 닿는 직접적인 위협은 결국 다른 사람들의 불합리한 공격과 민원입니다. 그리고 학교나 공교육 시스템은 그런 공격들로부터 교사를 보호해주는 데 실패했습니다. 불신이 쌓이고 쌓이면서 교사들은 정치 이야기를 꺼내지 않게 된 것이죠.
최근 불거진 ‘수학여행 논란’이나, 젊은 교사들의 목숨을 앗아간 악성 민원 문제도 그런 점에서 비슷합니다. 자신이 위험에 처해도 ‘문제를 크게 키우지 말라’는 이야기만 돌아온다면 제도를 믿기 어렵죠. 제도를 향한 불신은 침묵을 낳고, 그 침묵 속에서 문제의 본질은 방치됩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다른 한쪽에서는 ‘사이다’를 갈구하게 되죠. 최근 웹툰 원작의 드라마 <참교육>이 넷플릭스 국내 1위를 차지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듯합니다. <참교육>은 체벌 권한을 부여받은 정부 ‘교권보호국’ 요원들이 폭력을 동원해 교육현장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내용입니다. 과도한 민원으로 젊은 교사가 목숨을 잃은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연상시키는 인물도 나오고요.
사회와 제도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때 우리는 사이다 서사에 몰입합니다. 교사들의 인권침해 문제를 세심하게 해결해야 하는 건 교육당국과 정치입니다. 하지만 제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학생들을 단죄해야 한다는 주장이 인기를 끌었죠. 학생인권과 교권을 단순 대립시키는 속 편한 주장도 이와 결을 같이합니다. <참교육> 열풍이 씁쓸한 이유입니다.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어디까지 보장해줄지도 중요하지만, 그 보장된 권리를 제도가 어떻게 보호해줄지도 중요합니다. 교사가 부당한 정치적 공격에 휘둘리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의 정치적 중립’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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