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LA 항구의 컨테이너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연방대법원에 의해 위법 판결이 난 상호관세 환급 범위를 축소하기 위해 ‘버티기’에 들어갔다. 일괄 환급을 거부한 채 환급 소송을 제기한 기업에만 돌려주겠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백악관과 가까운 소식통을 인용해 법무부가 9일(현지시간) 연방순회항소법원 항소심 재판에서 “정부는 이미 거둬들인 관세를 일괄 환급할 의무가 없으며, 법원이 특정 기업에 대해 환급을 명령하지 않는 한 돌려주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앞서 미 국제무역법원(CIT)은 지난 3월 테네시주 내슈빌의 한 필터 업체가 제기한 관세 환급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며 모든 수입업체가 환급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 세관국경보호국(CBP)은 총 1660억달러(약 252조원) 규모의 상호관세 환급 시스템을 가동했지만, 법무부는 CIT의 권한을 문제 삼으며 항소에 나섰다.
법무부는 CIT가 소송 당사자뿐 아니라 전국에 있는 모든 기업에 대해 일괄 환급을 명령한 것은 권한을 넘어선 조치이며, CBP가 이미 최종 확정한 관세 납부 건에 대해서도 정부가 임의로 환급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무부는 또 현재 CBP가 가동 중인 환급 시스템도 CIT의 판결에 따른 것이 아닌, 정부의 자발적인 조치라고 주장했다. 법원 서류에 따르면 위법 판결된 상호관세를 낸 수입업체는 모두 33만여곳에 달하며, CBP는 지난달 22일 기준으로 850억달러의 상환을 승인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법무부의 논리에 설득력이 있어 정부가 항소심에서 승소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하급심인 연방지방법원은 원칙적으로 소송 당사자에게 필요한 구제만 제공할 수 있으며 전국적으로 효력을 미치는 명령은 내릴 수 없다는 연방대법원 판례 때문이다. CIT는 연방지방법원과 권한이 동일하다.
항소심에서 정부가 이길 경우 사건은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연방대법원은 지난 2월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한 상호관세 부과가 위법이라고 판결하면서도 환급 문제에 관해선 판단하지 않은 탓에 혼란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만약 법원에서 정부의 논리가 수용될 경우 소송 절차와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중소 업체들이 청구 자체를 포기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정부가 항소를 제기한 배경에도 이 같은 노림수가 깔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와인·자전거·낚시용품 수입업체들은 개별적으로는 환급 소송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면서, 최근 환급 시스템에서 배제된 모든 수입업체를 대표하는 집단소송을 인정해 달라고 CIT에 요청한 상태다.
750만달러의 상호관세를 납부했지만 45만달러만 돌려받았다는 한 장난감 업체 대표는 정부의 대응이 일단 보험금 청구를 거절하고 보는 “보험사들 같다”면서 “거듭되는 청구 거절을 끝까지 버텨낸 사람들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소모전 전략”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