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주 갖고 있는데 남의 회사 주총 와서 목소리 높여요?” 2004년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의장을 맡았던 윤종용 부회장이 항의하던 참여연대 측 소액주주들에게 쏘아붙인 말이다. 진행요원들은 ‘앉아서 발언하라’며 이들을 밀쳐 넘어뜨리기까지 했다. 주주는 주인은커녕 손님 대접도 못 받았다. 20년이 지난 지금, 주주의 위상은 달라졌다. 반도체 부문의 막대한 이익을 두고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성과급 지급 기준 개선을 요구하자 주주들은 분연히 일어났다. 채권자는 이자, 노동자는 임금, 협력업체는 대금으로 이미 보상을 받았으므로 남은 이익은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한 자신들의 몫이라고 했다. 이 ‘잔여분’을 위해 더 큰 기업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주인’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이재용 회장을 비롯한 최고경영진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으니 더 그렇다.
실상 그 주인의 자격이란 건 허술하다. 10년 뒤 기업가치를 보는 주주가 있는가 하면, 하루나 1초, 심지어 10억분의 1초만 소유하고 매매해서 이익을 남기려는 주주도 있다. 실적이 나빠질 것 같으면 가장 먼저 손을 털고 나간다. 최초 자본금 납입이나 기업공개 시점이면 모를까, 유통시장에서 주식을 매입한 돈은 회사가 아니라 다른 주주에게 돌아갈 뿐이다. 자사주 매입 덕분에 자본은 거꾸로 회사에서 주주에게도 흘러간다.
‘남의 회사’ 취급받다 주인 된 주주
주주만 주인 자격 있다는 건 허상
회사를 떠받친 보이지 않는 손들
말할 ‘자격’ 따지면 분노는 어디로
누가 주주든 회사는 굴러간다. 노동자는 다르다. 1995년 미국의 광고회사 치아트데이 런던사무소 직원들은 인수·합병으로 정리해고 위기에 처하자 고객사를 데리고 모두 회사를 떠났다. 결국 인수자인 옴니콘은 텅 빈 런던사무소를 단 1달러만 받고 직원들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 한국 반도체 기업의 세계적 기술력도 내부 구성원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SK하이닉스의 스토리를 담은 책 <슈퍼 모멘텀>에는 세계 최초로 MR-MUF 공법을 시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개발팀은 칩을 쌓아 붙이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제작 단계에서 기존의 압착 방식을 버리고, 액체 보호재로 칩 사이를 채우는 방식을 개발해 발열을 잡아내고 불량을 대폭 줄였다. 꼬박 2년에 걸쳐 50개 후보물질을 테스트한 결과다. 여기에 최태원 SK 회장의 결단과 뚝심, 세금을 깎아주고 기반시설을 지원한 국가와 사회, 희생을 감수하고 묵묵히 뒤를 떠받친 협력업체의 노고도 있었다. 특히 협력업체는 호황은 못 누려도 불황은 떠안는다. 2023년 반도체 불황 이듬해 삼성전자의 직접 채용은 4700명 늘었지만, 소속 외 근로자 수는 1300명 줄었다.
오늘날 기업은 특정 한 사람이나 집단의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온전히 그들에 의한 것이라거나 그들만을 위한 것이라고도 보기는 어렵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애플의 팀 쿡 등이 “기업의 목적은 더 이상 주주만을 위한 게 아니라 고객, 직원, 납품업체, 커뮤니티 등 모든 이해당사자의 번영을 함께 추구하는 데 있다”는 성명에 서명한 것이 2019년이다. 그러나 초과세수든 초과이익이든 기업이 거둔 천문학적 성과에 말 한마디를 보탰다가는 테러 위협까지 겪는 것이 한국 사회 분위기다. 발언의 ‘자격’이 없는 자는 입 다물어야 한다. 소액주주 운동은 획기적인 재벌 개혁 시도였지만, 자격을 사서 들어간 운동이 역설적으로 자격 있는 자만 말할 수 있다는 규범을 내재화하는 데 기여하고 말았다. 기존 질서를 넘어서는 상상력은 이제 철 지난 유행가다. 누가 부여했는지 알 수 없는, 주주처럼 불확실한 자격을 기준으로,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가르고 배제하는 논리를 공정으로 떠받든다.
결말은 어떨까. 박찬욱 감독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원작 소설 <액스>의 주인공에게서 실마리를 찾는다. 해고를 당한 그는 처음부터 수익을 노리고 수천 명을 내쫓은 주주와 경영진이 ‘적’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그들은 내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대신 그가 챙긴 건 자신과 비슷한 직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이력서 여섯 통이다. 그들을 죽여 없애면 일자리가 돌아오리라 믿는다. 구조가 보여도 가진 건 자격 없는 자의 무기력뿐일 때 분노는 결국 눈에 보이는 가까운 이들에게로 향한다. 개인의 차원에서 그것은 혐오나 폭력이며, 사회의 차원에서 그것은 극우화다. 한국뿐 아니라, 날로 극우화되는 세계는 <액스>의 주인공처럼 무력한 개인의 좁은 선택지가 향하는 길을 보여준다.
황경상 기획취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