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장은행은 궁여지책이었다. 벌금을 내지 못해 매년 수 명이 감옥에 가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작은 인권단체의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악질 범죄자도, 위험한 범죄자도 아닌 사람이 단지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갇히는 것은 비참하다. 가난이 곧 죄가 되는 악순환을 끊을 방법은 여럿이었지만,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고 해결을 위한 노력도 좀처럼 이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주년 기념 국무회의에서 장발장은행을 언급한 것은 벌금개혁운동을 하는 인권운동가로서는 각별한 일이었다. 대통령도 ‘사회운동 차원’이란 표현을 썼지만, 인권연대는 벌금제 개혁운동이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장발장은행을 만들었다. 장발장은행의 목표는 2015년 출범 당시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장발장은행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어 하루속히 문을 닫는 거다.
벌금을 내지 못했다고 하루에 10만원씩 갈음하는 방식으로 감옥에 가두는 것은 후진적이다. 300만원의 벌금을 내지 못한 사람을 한 달 동안 감옥에 가둬서 국가가 얻는 이익은 도대체 뭘까? 기껏해야 형벌의 엄중함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것, 가난한 사람에게만 유독 가혹하다고 해도, 반드시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교훈 정도일 텐데 놓치는 건 너무 많다.
300만원을 내지 못한 가난한 시민은 직장에서 쫓겨나고 어쩌면 가정도 파괴되는 몹쓸 일을 겪어야 한다. 게다가 돈이 없어서 감옥에 끌려가는 비참한 꼴을 겪어야 한다. 이건 얼마쯤의 금액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큰 고통이다. 국가는 이런 사람들을 잡아들이는 비용, 가둬서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비용에다 교도관 인건비 등 각종 관리비용을 써야 한다. 꼭 필요한 곳이라면 모르지만, 이건 전형적인 예산 낭비다. 얻는 것은 막연한 ‘공포’ 정도인데, 놓치거나 잃는 것은 너무 많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얼마든지 많다. 먼저 벌금을 매기는 방식부터 공정하게 바꿔야 한다. 누구는 300만원이 없어 감옥에 끌려가야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 금액은 들어왔는지 나갔는지조차 알 수 없는 적은 돈에 불과하다. 그래서 죗값을 돈으로 치르려면, 곧 재산을 빼앗는 방식의 형벌을 유지하려면, 벌금을 매기는 방식이 ‘공평’해야 한다. 그건 국민연금이나 국민건강보험처럼 소득과 재산이 많으면 많이 매기고, 가난하면 그 형편에 맞게 벌금을 매기는 거다. 한국에는 이런 제도가 없지만, 핀란드는 이미 1921년부터 이런 ‘재산·소득비례벌금제’라고 부르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각자의 형편에 맞게 공정하게 벌금을 매겨야 국가형벌의 기본이념인 정의에 부합할 수 있다.
대통령의 말처럼 벌금을 사회봉사명령으로 대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생업이 있다면 주말마다 사회봉사활동을 시키면 된다. 벌금형 대신 사회봉사명령을 선고하는 것도 좋고, 벌금을 내지 않으면 무조건 감옥에 가두는 게 아니라 사회봉사를 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사회봉사마저 거부하는 경우에 한해 감옥에 가두는 식으로 단계적 대응이 합리적일 것이다.
장발장은행의 역할이라곤 그저 500만원 정도의 벌금을 무이자, 무담보로 빌려주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돈을 빌리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살았다!”며 고마워한다. 정부는 이런 일을 할 수 없을까? 지금도 벌금을 나눠 내거나 나중에 내게 하는 분납과 연납 제도가 있다. 다만 검찰청에서 신속하게 실효적으로 일처리를 하지 않을 뿐이다. 미국처럼 벌금 납부를 위한 보증보험제도를 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형사사건에서 보석을 허가할 때, 보석금을 실제 현금 대신 보석보증보험증권으로 내는 것처럼, 벌금에도 보증보험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벌금형의 집행유예를 확대하고, 벌금을 내지 못해 감옥에 하루 동안 가두는 금액을 지금의 10만원에서 30만원쯤으로 인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모든 물가가 올랐고, 국민소득도 1인당 4만달러를 향하고 있는데, 감옥에 보내는 기준 금액만 옛날 그대로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뭐가 되어도 좋다. 어떻든 돈 때문에 감옥에 가는 비참한 행렬을 멈춰야 한다. 가난한 시민들의 고통을 외면하면 안 된다.
근원적 해결책도 중요하다. 민사사건의 형사화를 막고, 기초질서 위반 등 경미범죄를 비범죄화해야 한다. 선도국가 대한민국이 1921년의 핀란드, 1975년의 독일도 했던 벌금개혁을 여태껏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끌려가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부디 그렇게 여기는 눈 밝고 마음 너른 정치인, 관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