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호남 지역에 새로운 반도체 공장 건설이 검토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난 일요일, 환경주일 연합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용인 이동읍 시미리에 다녀온 직후였다. 환경주일 예배는 매년 생태·기후 현안을 품은 현장에서 열리고 있는데, 지난해에는 금강 세종보 재가동에 맞선 투쟁 현장에서, 올해는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조성 예정지에서 진행됐다. 이날 에배에는 현안에 연결되고자 하는 이들이 모였다. 지역은 달랐지만, 사회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제 질서 아래에서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 묻고자 한다는 점에서 같은 마음이었다.
갓 모내기를 마친 초록빛 논에 고인 물에서는 반사된 마을이 일렁이고 있었다. 산들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었고, 밭과 집, 창고와 농로가 이어졌다. 반도체 클러스터 국가산단이 건설되면 사라질 곳이었다. 공장과 도로, 송전선로와 각종 산업 인프라가 이 지역을 채우게 될 것이다.
반도체 산업으로 인해 전국이 들썩이는 요즘인데, 이미 오래전부터 산단을 건설하기 위한 초석은 놓이고 있었다. 언뜻 특별할 것 없는 농촌 풍경이지만, 오랜 시간 사람과 흙, 물과 생물들이 관계를 맺으며 유지해온 소중한 생활세계였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예배는 초록 잎을 드리운 300년 수령의 두 느티나무 사이 플라스틱 의자와 평상에 모여 앉아 진행됐다. “아합아, 나봇의 포도원을 뺏지 말라!”는 성경 구절을 중심으로, 삶의 기반이 경제 논리에 의해 박탈되는 것에 관한 메시지를 들었다.
시미리가 속한 면의 소재지는 송전리다. 소나무 송(松), 밭 전(田) 자를 이름으로 쓰는 마을이다. 송전초등학교 초대 교장은 일본인인데, 그의 이름에 바로 이 ‘松田’이라는 글자가 들어있고 거기에서 마을의 이름이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를 주민께 들으니 지역 공동체가 외부의 힘으로부터 받아온 수탈의 역사가 한 겹 더 포개지는 듯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잘 알려져 있듯 막대한 양의 물과 전력이 소요된다. 경기권 산업단지 건설을 둘러싸고 용수와 전력 공급 문제, 지방 이전과 계획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져 온 이유다. 이번 호남 지역의 반도체 공장 건설 소식은 한편으로는 예견된 것이라 할 수 있겠지만, 빠르게 진행되는 첨단산업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상실할 것이 많을지 염려스럽다. 기존 예정지의 분산이 아닌 확장이라면, 지금까지 제기돼온 우려가 해소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1988년 출간된 허수경 시인의 첫 시집에는 ‘우리는 지방도시 근교에 살고’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지방도시 근교에는 비닐하우스마다 한 개씩의 태양이 이글거리고 황화철로 삭아내리는 강과 공장, 사람은 살지 않으나 도시를 먹여 살리느라 죽어가는 도시 근교가 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시다. 읽을 때마다 “근교”가 도심의 식민화된 지역으로, 산업 발달의 부담 전가가 잘 형상화된 곳으로 느껴졌다. 돌아오는 길에 이 시를 떠올렸다. 이 ‘근교’는 어디까지 확장될까. 우리는 이 땅에 대한 착취의 끝에 가서야 비로소 확장을 멈추게 될까.
윤은성 시인·기후생태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