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아침은 예상 밖에 그리 초라하게 밝아왔다. 만약 유권자의 욕구에 더 솔직했더라면, ‘혹시나’ 하고 기대하던 이들마저 ‘역시나’ 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였을 텐데. 이번 6·3 서울시장 선거 얘기다. 여러 평론가들의 고담준론이 펼쳐지지만, 내 눈엔 승패를 가른 건 결국 집값이다.
이재명 정부가 주가를 뻥튀기해줘도 가장 큰 고갯마루인 집 문제를 넘어서긴 어렵다. 며칠 전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또한 여당의 패인을 부동산이라고 찍었는데 적확하다. 심지어 “정원오 후보가 안 되게 된 가장 큰 요인은 부동산 문제에 이 대통령이 너무 말을 많이 한 것”이라고 직격했다. 투기세력을 겨냥한 잇단 ‘사이다 SNS’가 청량감은 줬지만 타격감은 못 줬다.
서울 부동산 시장은 강남 3구 등 일부만 새 발의 피만큼 주춤했을 뿐, 다른 구는 신고가 행진을 이어간다. 한쪽을 누르니 다른 쪽이 부푸는 풍선효과다. 더구나 대출 규제로 강북 등을 중심으로 15억원까지 이른바 ‘키 맞추기’도 펼쳐졌다. ‘강남과 격차 축소로 강북민들이 좋아하겠지’ 하는 안일한 계산까지 한 건 아닐까, 솔직히 난 의심이 들었다. 결국 전반적으로 집값이 올라 서민들은 더 고달파진 모습이다. 가뜩이나 전세사기 여파로 빌라·다세대주택 같은 비아파트 공급이 줄어든 마당에 전월세 가격이 급등했다.
이런 빈틈을 ‘오세훈표 개발 공약’이 파고들었다. 신속통합기획에 모아타운 등으로 공급을 늘리겠다는데 집주인은 물론, 세입자들도 혹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화룡점정’마저 보탰다. 무려 도시철도 7개 노선을 던지며 2029년까지 ‘내 집 앞 10분 전철역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했다. 전철 공약은 사실상 부동산 공약이다.
면목선, 난곡선, 동북선 등이 들어선다면, 170여개 동 83개 역이 생긴다. 오 시장은 아예 ‘170, 7, 83’ 숫자를 새긴 티셔츠를 입고 뛰었다. 특히 지하철 없던 14개 동은 새로 역세권이 된다니, 나라도 솔깃하겠다. 여기에 맞선 정원오 후보의 ‘30분 통근도시’는 초라해 보인다. 근본적으론 위에서 ‘가게무샤(影武者)’를 잘못 세운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지역개발 같은 이익 앞에 초연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어찌 보면 그런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게 정치의 본업일 수 있다. 선비 같은 근엄한 표정 아래 숨겨진 ‘이기적 유전자’를 까발리자. 개발 요구는 그저 속물적인 게 아니라 필부필부들의 ‘숭고한 바람’이다.
한수(漢水) 이북의 우리 동네 얘기를 잠깐 곁들이자면, ‘부동산 불장’에도 집값은 오뉴월 엿가락처럼 눌어붙어 옴짝달싹 안 한다. 도지사도, 시장도, 구청장도, 도의원도, 국회의원님도 죄다 파란색이다. 대대로 빨간색은 차마 찍지 못하겠다는 ‘깨시민들의 조직된 힘’이 가득한 동네여서다. 자기 계급이익에 반하는 줄 빤히 알면서도 너나없이 또 제 발등을 찍어댄 처절한 심정을 지체 높으신 나으리들은 짐짓 거들떠보기나 할까.
이 대통령은 전세난과 관련해 “전세 물량이 줄어든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전세는 월세에 비해 서민들에게 이로운 제도로 수십년을 버텨왔다. 그런데 갭투자라는 망령 탓에 전세는 나쁜 것이란 누명을 썼다. 구더기(갭투자) 무서워 장독(전세)을 깨뜨려선 안 된다. 파리(투기꾼) 잡는 게 먼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전세는 사라져야 할 것”이라 했을 때 민주당은 뭐라고 비판했더라…
정부가 조만간 세제, 금융, 규제, 공급 등을 망라한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보수의 1번타자’가 돼버린 2030 마음을 돌려세울 도심지 대대적인 청년임대주택 공급책 고민은 있기라도 한 걸까. 오히려 보수당 비스름하게 찔끔찔끔하는 사이 오세훈처럼 낯 뜨거울 만큼 솔직한 보수당은 당근책을 마구 뿌려대니 속수무책 아닌가. 황새 따라가려다 뱁새 가랑이가 얼얼해진 모습이다.
요즘 눈길을 끄는 이문영 서울대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들어 ‘우아한 위선’의 시대에서 ‘정직한 야만’의 시대가 됐다고 일갈했다. 국내도 매한가지다. 박애·연대 같은 고상함은 사그라들고, 집값·주식 같은 날것들은 날개를 단다. ‘PC주의’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더 세련되거나, 그럴 능력이 없다면 아예 솔직해져보라.
노무현·문재인 때처럼 어설프게 손댔다가는 되레 기름을 끼얹을 위험이 크다. 강남 3구는 아예 ‘버린 카드’로 봐라. 나머지를 아우를 지혜가 절실해진 시점이다. 자신 없으면 “그냥 시장에 맡기겠다”고 손 터는 편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전병역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