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간절하지 않은 날의 기술
최혜진 지음
민음사 | 408쪽 | 1만8000원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은 민음사를 독자들에게 각인시킨 대표적 기획 중 하나가 ‘세계문학전집’이다. 1998년 발간을 시작한 이 전집은 작품과 묘하게 맞물리는 명화 이미지를 얹은 표지 디자인으로도 사랑받았다.
작가이자 번역가 최혜진의 에세이 <아무것도 간절하지 않은 날의 기술>은 바로 그 표지 그림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책이다. 작가가 중년이 된 어느 날부터, 아무것도 간절하지 않은 날들이 찾아왔다. 평생 호기심을 연료 삼아 달려왔는데 보고 싶은 것도, 쓰고 싶은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병원에서 링거를 맞는 심정으로 택한 것이 ‘고전’이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전집 수백 권의 서지 정보를 읽다가 느낌이 오는 책들을 골라 ‘직관’의 끌림대로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남은 열두 권의 고전과 열두 점의 그림이 교차하는 자리 위에서 고해성사하듯” 쓴 글을 모은 책이다.
위부터 반 고흐의 그림이 들어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뭉크의 그림이 쓰인 <페스트>, 마티스의 그림이 얹힌 <인간의 굴레에서> 표지. 민음사 제공
“고전은 거대한 병실 같았다. 그 속의 인물들은 지혜를 훈수 두는 스승이 아니라 바로 옆 침상에서 끙끙대며 밤을 지새우는 환우였다.” 저자는 개인적인 질병의 경험으로부터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지독한 투병 끝에 도달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건강론”으로 읽는다. 평생 죽음의 공포와 질병에 시달리던 니체는 “춤추는 별을 낳으려면 인간은 자신 속에 혼돈을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고 썼다. 이 책 표지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수수께끼처럼 출렁이고 있다.
작가는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와 앙리 마티스의 ‘춤’을,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와 에드바르 뭉크의 ‘죽음의 침대’를 겹쳐 하나하나 읽어간다. 텍스트와 이미지를 연결해 자기만의 문장을 길어 올리도록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