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연락 끊는 ‘고스팅’
설명조차 없는 완전한 물러남
“일종의 상징적 자살”로 분석
타인과 직접 교류 감수 않고
AI·앱서 사회적 연결 찾는 시대
공동체 자산 ‘신뢰’ 붕괴의 신호
여러 통신 수단의 발달로 멀리 있는 사람과 관계 맺기 쉬워졌지만, 진작 끊어져야 했을 관계가 유효기간을 넘어 지속하기도 한다. 언스플래쉬
고스팅
도미닉 페트먼 지음 | 최리외 옮김 | 동녘 | 200쪽 | 1만6800원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받는 최악의 방법은 무엇일까. 대판 싸우고 헤어지자는 말을 듣는다면 순간 감정이 북받치겠지만 시간이 흐른 뒤엔 깔끔하게 정리될지 모른다. 오랜 권태기 끝에 지리멸렬하게 헤어진다면 가끔은 생각나겠지만 충격이 크지는 않을 수 있다.
순식간에 소식이 끊기는 ‘잠수이별’이라면? 카카오톡 메시지를 읽지 않거나 읽는다 해도 답이 없다. SNS 계정은 삭제됐다. 이별 같기는 한데, 이별이 확실한지 알 수가 없다. 상대가 대체 왜 그러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최근의 징조나 오래 이어져온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보는 수밖에 없다. 내가 무슨 실수를 했나, 연인이 보냈던 암묵적 메시지를 읽어내지 못했나. 연옥과 같은 상태에서 자책감은 이어진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 고문’에도 시달린다. 이별의 아픔은 오래도록 지속된다.
뉴욕 뉴스쿨 미디어 및 신인문학 석좌교수 도미닉 페트먼은 갑자기 연락을 끊는 ‘고스팅’(ghosting)에 대해 고찰한다. 그는 고스팅이 “설명조차 제대로 남기지 않고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완전히 물러나버리는 것”으로 “일종의 상징적 자살”이라고 본다. 이는 “실제로 죽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는 자살”이면서도 “실제와 똑같은 죄책감, 고통 그리고 해소되지 않는 감정을 남길 수 있다.” 갑작스러운 소통 두절이 현대만의 사례는 아니겠으나, 페트먼은 SNS,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 미디어 환경이 특색을 부여한다고 본다. 자동차가 나타난 후 교통사고가 발생했듯, 문자 메시지가 생기면서 문자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 행위에도 의미를 찾게 된 것이다.
페트먼은 고스팅을 세 가지 층위로 분류한다. 먼저 ‘로맨틱 고스팅’이다. 현대의 로맨틱 고스팅은 과거의 이별에 비해 훨씬 많은 회피 기술이 필요하다. 과거의 연인들에게는 대면, 편지, 전화 등이 전부였으나 현대엔 문자, e메일, DM 등 온갖 연결 수단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엔 연인과 이별하기 위해선 마음이 변했다는 사실을 직접 알릴 최소한의 용기가 필요했다. ‘로맨틱 고스팅’의 시대엔 도망치면 그만이다. ‘후기 기술 제국주의 문화’에서 파생된 회피 기술만 익힌다면, 상대의 황망한 표정과 어색한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
물론 로맨틱 고스팅이 정당할 때도 있다. 상대가 폭력적이거나 신뢰할 수 없을 때 고스팅은 안전한 이별 수단이 된다. 이 경우 고스팅은 “가부장적 교제 의례의 비대칭적인 지형 위에서 늘 벌어지는 성별 전쟁의 대항적 실천”이다. 이처럼 로맨틱 고스팅은 맥락에 따라 다르게 평가돼야 하지만, 저자는 궁극적으로 ‘스트리밍 시대의 역설’이 사랑에도 적용된다고 본다. 볼 것은 넘쳐나지만 몰입할 가치가 있는 것은 찾기 어렵다. 데이팅 앱을 잠시만 뒤적이면 잠재적 파트너의 목록이 이어지지만, 그 누구와도 진지하게 관계 맺기는 쉽지 않다.
SNS는 21세기 인간관계의 주요 수단이다. 픽사베이
‘가족 및 우정 고스팅’도 있다.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가 위대한 예술가가 돼 세상에 나타난다는 ‘가족 고스팅’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으나, 이 책에서 전하는 양상은 조금 더 현대적이다. 이는 과거에 비해 현대 사회의 변동성이 훨씬 크다는 사실과 관련 있다. 평생 고향을 떠나지 않고 살아간 사람들이 많던 예전과 달리, 사람들을 각기 다른 장소와 상황으로 몰아가는 사회적 압력은 현대에 훨씬 강하다. 사회가 급속히 변하는데 인간관계가 똑같이 유지될 리 없다. 사회적 그물망은 넓어지고 얇아졌다. 친구 6명이 같은 집 혹은 인근에 살며 매일 같은 카페에서 만나는 시트콤 <프렌즈>도 벌써 30년 전 이야기다.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한 인공지능(AI) 앱들은 “타인들과의 직접적인 교류를 감수하지 않고도 대화의 양태와 양식을, 말하기와 듣기의 시뮬레이션을 소비”하게 돕는다. ‘친구 없는 우정’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로맨틱 고스팅’ ‘가족 및 우정 고스팅’을 ‘세태 풍자’ 정도로 바라볼 수 있었다면, ‘사회적 고스팅’은 조금 더 심각하다. 사회적 고스팅은 공동체의 주요 자산인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페트먼은 이 대목에서 고스팅의 의미를 확장한다. 일자리 제안을 받아 이직을 준비했으나 별다른 설명 없이 무산된 사례, 갓 채용한 직원이 이유 없이 직장에 나타나지 않은 사례, 고향이 재개발 사업으로 알아볼 수 없게 변한 나머지 ‘장소들에 의해 고스팅’당한 사례까지 언급한다. 페트먼은 특히 직업적 고스팅은 선진국에서 복지 제도와 사회적 안전망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한 1990년대에 그 씨앗이 뿌려졌다고 본다. 마거릿 대처가 “사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일갈한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의 인간관계는 상호 신뢰에 뿌리 박고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비용·편익 분석에 따라 대체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어갔다. 이제 세계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경쟁적인 동기만 남은 적대적인 개미집”이 되었다. “역할과 책임이 은은하고도 만연하게 유기되는 일”이 널리 퍼졌다.
고스팅이 문제인 이유는 정체성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관계의 한 축이 무너지면 정체성도 위험에 빠진다. 가뜩이나 불안하고 취약한 현대의 삶은 관계 변화에 따라 더욱더 강하게 요동친다.
테크 권력자들은 “사회적 연결을 시뮬레이션하는 홀로그램 ‘친구들’ 구독 서비스를 만드는 데 여념이 없”다. 저자는 “우리는 다시금 떠난 이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는 말로 책을 끝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