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12일 네팔 사가르마타 지역 고락셰프의 칼라파타르 전망대에서 바라본 에베레스트. Getty Images/이매진스
해발 8849m. 인간이 오를 수 있는 지구상 가장 높은 곳이자 전 세계 산악인 일생의 꿈이 모여드는 곳, 에베레스트입니다. 골짜기와 봉우리 곳곳을 뒤덮은 만년설로, 그 모습을 온전히 드러낸 적 없는 극한의 땅에서 실종됐던 한 셰르파(등반 가이드)가 6일 만에 살아 돌아왔습니다. 혹독한 환경을 끝내 이겨낸 그의 분투, 불가능해 보였던 기적 같은 생존에 전 세계의 응원과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동시에 발길이 쉽게 닿을 수 없는 곳이었기에, 주목받지 못했던 또 하나의 비밀이 그의 귀환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에베레스트 관광산업을 가능케 한 잔혹한 ‘노동 착취’의 민낯이었습니다. 감동적인 생존담으로 묻힐 뻔한 이 사건은, 에베레스트 관광산업이 감춘 잔혹한 노동 구조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죽음의 지대’에서 6일···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셰르파
네팔인 셰르파 힐러리 다와 셰르파(57)는 지난달 29일, 영국인과 폴란드인 고객을 이끌고 정상 등반을 마친 뒤 하산하다가 일행과 떨어졌습니다. 해발 7500m 지점, 산소 농도가 평지의 절반에 불과해 가만히 있어도 생명이 스러지는 ‘죽음의 지대(Death Zone)’였습니다.
극심한 탈진으로 “잠시 쉬겠다”며 뒤처진 그를 눈앞에서 놓친 일행은 폭설과 산소 부족을 이유로 하산했습니다. 동행했던 영국인 등반객은 “그를 구조하려다간 남은 산소를 다 써서 모두가 위험해질 상황이었다”고 당시의 절박함을 털어놨습니다.
가족마저 희망을 접고 장례를 준비하던 실종 6일째,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에베레스트 정화 작업을 하던 팀이 해발 5400m 쿰부 빙폭 아래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기어 내려오던 힐러리를 발견했습니다. 심각한 동상과 골절을 입었지만 그의 의식은 또렷했습니다.
힐러리는 주머니 속 초콜릿과 녹인 눈으로 버텼으며, 하산 중 크레바스(빙하 균열)에 추락했으나 이어진 눈사태가 균열을 눈으로 채워준 덕에 극적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등반계에서는 “사실상 생존 확률 0%에서 살아 돌아온 기적”이라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지난 4일(현지시간) 네팔 에베레스트 가이드 힐러리 다와 셰르파가 카트만두의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EPA연합뉴스
8000m 올랐던 셰르파, 알고 보니 대체 투입된 ‘캠프 요리사’
반가움도 잠시, 그의 생환 소식이 전해진 뒤 논란이 일었습니다. 힐러리의 원래 직무가 가이드가 아니라 캠프 요리사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입니다.
등반 가이드 업체는 원래 배정된 가이드가 아프다는 이유로, 고산 등반 훈련을 받지 않은 요리사를 대체 인력으로 보냈습니다. 등반에 참여했던 폴란드 출신 등반가 마리우시 흐미엘레프스키는 “숙련된 전문 가이드를 배정받을 것으로 알고 추가 비용까지 냈다”며 격분했습니다.
힐러리의 동료인 파상 다와 셰르파는 “요리사로 채용한 사람을 가이드로 사용한 것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에베레스트 전문 기자 벤 에이어스는 영국 BBC에 “캠프 요리사는 일반적으로 8000m급 등반 가이드 훈련을 받은 인력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구조 대응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힐러리의 가족과 등반가들은 업체가 실종 사실을 알고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흐미엘레프스키는 실종 다음 날 업체에 이 사실을 알렸지만 본격적인 수색은 며칠 뒤 시작됐다고 말했습니다.
힐러리의 가족들은 헬기를 띄울 비용을 아끼려 수색을 미룬 것 아니냐며 경찰에 과실 혐의로 신고서를 냈습니다. 힐러리의 아내 다무 셰르파는 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남편이 실종된 직후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며 “정의를 원한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사측은 “폭설과 화이트아웃(시야 완전 상실) 상태가 이어져 구조대를 보내는 것 자체가 자살행위였다”며 과실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네팔 관광당국은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2014년 4월27일 미국 뉴욕에 있는 유나이티드 셰르파 협회 수도원에서 열린 기도회에 희생자들의 사진이 놓여있다. 이날 기도회는 같은 해 4월18일 에베레스트 눈사태로 목숨을 잃은 셰르파 16명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됐다. GettyImages/이매진스
역대급 관광 특수의 그늘···소모품 전락한 ‘산을 지키는 이들’
이번 사건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영광 뒤에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는 셰르파의 위험과 희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냈습니다.
올해 에베레스트는 역대 최대 규모의 관광 특수를 누렸습니다. 네팔 정부는 등반 허가증으로 720만달러에 달하는 전례 없는 이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수만~수십만달러를 내고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전하는 외국인 등반객으로, 관련 관광 산업 규모는 수십억 달러로 추산됩니다.
이 거대한 산업을 떠받치는 건 셰르파의 노동입니다. 이들은 위험 구간을 먼저 개척하고 밧줄과 사다리를 설치합니다. 산소통과 텐트, 식량 등 수십㎏의 장비를 옮기고, 기상 악화 시 구조 임무까지 수행합니다. 사실상 길잡이와 안전관리자, 구조대원 역할을 동시에 맡는 셈입니다.
관광 특수의 결실은 이들에게 충분히 돌아가지 않습니다. 치열한 제살깎기 경쟁으로 저가 등반 상품이 난립합니다. 업체들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숙련도가 낮은 인력을 투입하고 안전 투자를 줄입니다. 힐러리를 고용한 업체도 업계 평균보다 저렴한 가이드 상품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네팔 당국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셰르파들은 오래전부터 공식 산악구조대 설치와 안전 규정 강화, 가이드 자격 검증 강화, 등반객 수 제한 등을 요구해왔습니다. 제도 개선은 더딥니다. 힐러리의 아내는 “정부는 이번 시즌 에베레스트 등반으로 10억루피(약 100억원)가 넘는 기록적인 수익을 올린 것을 자축하면서, 왜 우리의 호소에는 응답하지 않았나”라고 비판했습니다.
등산 전문 매체 에베레스트 크로니클은 “힐러리의 생존은 에베레스트의 어두운 면을 드러냈다”며 “헬리콥터 구조 비용을 부담하는 이가 없어 한 남자가 죽을 뻔했고, 정부와 소수 업체가 과두 정치인처럼 부를 축적하는 동안 가장 가난한 이들은 소모품처럼 취급받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셰르파는 티베트어로 ‘산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 이 산을 지킨다는 자부심,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이들은 오늘도 산을 오릅니다. 세계 최고봉이 그 높이만큼 기록적인 수익을 이뤄낸 사이, 그 길을 닦는 이들의 삶과 노동은 그 성공에서 철저히 배제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