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가 끝났건만 선관위의 관리 부실 후폭풍이 거세다. 선관위는 투표용지를 충분히 준비하지 못해 투표중단 사태를 초래했으니 그것만으로도 과실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이게 문제가 아니다. 시민 참정권이 침해됐고 따라서 재선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터져 나오는데 아직 이렇다 할 응답과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선관위는 정녕 위태로워 보인다.
지금 선관위가 부실이냐 아니면 부정이냐를 놓고 설왕설래가 일고 있다. 그러나 나는 사태가 훨씬 심각한 단계로 들어섰다고 본다. 무모해 보일 정도의 부실함과 무책임함을 반복하는 국가기관은 부정한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시민은 이런 종류의 책임 회피를 ‘세월호 사태’와 ‘이태원 참사’에서 질리도록 목격한 바 있다. 그리고 사태가 부정에 국한된 것이라면 개선하면 된다. 투표중단으로 인한 당선자 변경 가능성을 놓고 면밀하게 검토해 적법하게 대응하고, 재발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된다. 불행하게도 사태는 이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당연히 선관위는 투표중단으로 인한 당선자 변경 가능성도 낱낱이 조사해 유권자와 해당 피선거권자에게 보고해야 한다. 선거구별로 적법한 후속조치를 선관위 의결로 신속하게 확정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문제는 유권자가 선관위의 선거관리 역량을 의심하게 됐다는 데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권자의 참정권이 훼손됐으니 재선거가 필요하다는 일각의 주장에 제대로 된 답변도 없이 우왕좌왕하는 선관위를 보면서 이런 국가기관을 ‘헌법상 독립기관’으로 보호해야 할 이유가 뭔지 묻기 시작했다.
정의는 정의롭게 보여야만 한다는 말이 있다. 때로 부당해 보이는 판결이 나와 사법적 정의에 대한 의혹을 초래하는 사태를 경계해서 나온 격률이다. 공정은 한발 더 나아간다. 공정하게 보이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공정하지 않다. 나는 언론 윤리를 가르치며 이 요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공정성에 관해 언론 윤리는 당신이 기자로서 어떤 의도나 동기로 취재하고 보도했는지 묻지 않는다고. 언론의 공정성이란 당신 취재 행위와 기사 내용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규범일 뿐이라고. 선관위는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해야 하며, 이것이 그 의무의 거의 전부다. 공정함을 인정받지 못하는 선관위는 위태롭다.
나는 2020년 총선 이후 버섯처럼 솟아나는 각종 부정선거론이 우려할 만하다고 보아 그들의 논변구조를 검토한 적이 있다. 그것은 대체로 어처구니없는 관찰부터, 무모한 논리, 입증책임에 대한 오해 등이 섞인 혼란스러운 단말마였지만, 일부는 교묘하게 시민 오해를 유도하는 제언이었고, 다른 일부는 정략적으로 동기화된 선동 그 자체였다. 그런데 부정선거론만큼이나 염려할 만한 것은 부정선거론에 대응하는 선관위의 공식 발언이었다. 그것은 선거법 조문에 대한 해석이거나, 법원의 판결을 옮겨놓은 것이거나, 아니면 일부 전문가의 견해를 인용한 것이 전부였다. 그것은 대체로 안일했다.
국가기구는 시민의 의혹에 적극적으로 응답할 의무가 있다. 시민의 ‘어그로’에 적절하게 대응해야 할 책임이 있다. 시민의 일부가 정략적으로 채택한 민주적 정당성을 허무는 선동도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 대처는 물리적 증거에 기반해야 하고, 탄탄한 논증구조를 갖추고, 압도적으로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