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기본소득 시범 사업이 10개 군에서 17개 군으로 확대됐다. 기존 시범 사업 지역인 옥천군의 사례가 보도된 후 발표된 것이지만 예전에도 대통령이 이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언급한 적이 있으니 즉흥적인 결정은 아닌 것 같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은 농어촌특별세를 그 재원으로 사용해서 영구화하자는 제안까지 하고 있다. 돌아보면 지난날 ‘녹색평론’을 중심으로 농민기본소득 이야기가 나온 이래로 이만한 성과를 이룬 것은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다.
AI 산업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기본소득을 실시하자는 이야기가 일각에서 꾸준히 있어왔고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도 국민배당을 말한 적이 있다. 이것은 이재명 대통령의 ‘모두의 성장’이라는 기조에 부합하는 일이며, 경제적 부의 증가를 오로지 다시 경제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아야 한다는 일방적인 성장 논리보다는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기본소득의 철학이기도 하지만, 한 국가가 이룬 경제적 부는 기본적으로 그 나라의 전통적인 지혜와 문화와 동시대인들의 협업에 뿌리박고 있다. AI 산업이라고 예외일 리 없는데, AI의 근간이자 전체라고 해도 무방한 빅데이터야말로 역사적으로 형성된 지식과 정보, 지혜, 문화와 생활 습관들로 형성된 것 아닌가. 물론 AI가 생태계와 인간성에 끼치는 해악을 경제적 효과로 덮을 일은 아니다.
문제는 AI 산업으로 얻은 초과세수로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의 논리적 위험성이다. 이 말은 AI 산업에서 이윤을 얻지 못하고 그로 인해 세수가 변변찮으면 안 해도 된다는 역논리도 가능하게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주식시장 활성화로 인한 초과세수 운운도 마찬가지다. 이런 논리로 농어촌기본소득을 하게 되면 이것은 기존 복지제도의 현금화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일찍부터 기본소득을 주창했던 ‘녹색평론’ 발행인 고 김종철 선생은, “복지국가란 국가의 계속적인 세수 증가를 전제로 해서만 실현 가능한 시스템”이라고 지적하면서 경제개념을 재정의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선생이 대안으로 제시했던 것은 “순환경제 시스템”이다. “순환경제란 단순히 적게 생산하고, 적게 소비하는 생활패턴을 뜻하는 게” 아니라 “절제하고 절약하는” 삶의 논리를 가리킨다.
AI발 기본소득의 논리적 위험성
헌법 제119조 2항에는 국가가 경제제도를 운용함에 있어서 국민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규정하고 있는데 특히 국가는 국민들의 경제적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도록 되어 있다. 헌법인 한 문구가 다소 추상적일 수밖에 없지만 아무튼 국가는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해 “인간다운 생활을”(제34조 1항) 보장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농어촌기본소득은 헌법적 가치와도 배치되지 않으며 심지어 농어촌 지역주민은 그동안 자본 주도의 경제성장 논리에 휘말려 나라의 실질적 토대, 즉 물질과 정서적 안정을 제공하고도 말할 수 없는 피해와 모욕을 당해왔다. 농어촌 지역의 인구 감소는 전적으로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이며 이러고도 인구가 유지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차라리 파렴치에 가깝다. 따라서 초과세수와 관계없이 농어촌기본소득은 영구적으로 확대, 지속되어야 한다.
한편으로 농어촌 지역은 기후위기가 가속화하는 현재 상황에서 개발로부터 보존되어야 할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데, 한 예로 며칠 전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서울 시내도 녹지에 따라 폭염 피해가 지역마다 다른 기후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현실 때문에라도 국토의 녹지대인 농어촌 지역을 유지해주는 주민들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균형발전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다. 균형발전 차원에서 보더라도 농어촌 지역으로 인구가 분산되고, 대신 서울 및 대도시가 축소되어야 해당 지역의 시민들도 좋은 삶을 누릴 여지가 생긴다. 나아가 AI가 파편화시키는 사람 및 자연과의 관계에 대응해 지역 단위에서의 직접적이고도 친밀한 관계 구축은 앞으로 예상되는 ‘디지털 마음병’을 완화시켜줄 것이며 농어촌기본소득은 이를 위한 물질적 토대 역할을 할 것이다.
영구 지속해야 하는 농어촌기본소득
진짜 중요한 것은 농어촌기본소득 너머에 있다. 농어촌 지역민들의 활력 있는 삶을 위해서는 건강한 노동 역량을 펼쳐야 하는데 이는 기업에서 채택하고 있는 노동생산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가치 있는 노동을 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좋은’ 일자리다. 기본소득을 놀고먹는 것으로 희화화하는 각박한 마음들을 교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인구 유입에 맞는 삶의 노동이 필요하다. 인간 본성의 발전적 발현을 위한 노동과 공유재 성격의 기본소득의 결합은 참다운 문명 전환의 시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는 6월25일은, 오래전부터 농민기본소득을 주창하셨던 고 김종철 선생의 여섯 번째 기일이다.
황규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