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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약

배리 고든 부잔 영국 런던정치경제대 명예교수는 현재 세계의 모습을 이렇게 평가했다.

미국도 중국도 세계를 운영하려 하지 않으며, 그 결과 국제사회가 분절되고 중심이 없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구 세계질서를 유지하던 제도와 신뢰 또한 무너졌고, 그가 2차 냉전으로 규정했던 러시아와 서방국가의 대립 구도 역시 지난해부터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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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권 없는 광란의 전환기…아무도 세계를 운영하려 하지 않는다”

입력 2026.06.15 21:11

‘세계질서’의 재구성

배리 고든 부잔

영국 런던정치경제대 명예교수

배리 고든 부잔 영국 런던정치경제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14일(현지시간) 런던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런던 | 박용하 기자

배리 고든 부잔 영국 런던정치경제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14일(현지시간) 런던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런던 | 박용하 기자

서방 질서 해체와 미국 영향력 약화, 초강대국 시대 끝나고
다극체제 진입한 2025년은 3차 냉전의 원년
미국도 중국도 모두 AI 군비 경쟁 가속화, 규제도 어려워…
세계화 후퇴 경제민족주의가 주도권
기후위기 정점에 질서 재편까지 겹친 ‘이중위기’…
중견국 연대가 새 국제질서 복원 이끌어야

“오랫동안 세계의 문제는 누군가 세계를 지배하려 했고, 우리가 그것을 막아야 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정반대다. 아무도 세계를 지배하려 하지 않고, 심지어 세계를 운영하는 일조차 맡으려 하지 않는다.”

배리 고든 부잔 영국 런던정치경제대 명예교수는 현재 세계의 모습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지역안보복합체 이론을 정립한 국제정치학자로, 안보학을 비군사적 영역까지 확장한 코펜하겐 학파를 이끈 핵심 학자로 평가받는다.

부잔 교수는 초강대국(superpower)의 시대가 끝났다고 봤다. 미국도 중국도 세계를 운영하려 하지 않으며, 그 결과 국제사회가 분절되고 중심이 없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구 세계질서를 유지하던 제도와 신뢰 또한 무너졌고, 그가 2차 냉전으로 규정했던 러시아와 서방국가의 대립 구도 역시 지난해부터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고 봤다. 그는 기존 세계질서의 해체와 기후위기라는 이중위기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협력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14일(현지시간) 런던에 있는 부잔 교수의 자택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부잔 교수와의 일문일답.

- 왜 2025년을 ‘3차 냉전’의 시작점으로 보나.

“2025년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서방의 해체였다. 앞선 냉전에서 서방을 하나로 묶고 하나의 전략적 행위자로 만들어준 신뢰와 제도가 사라졌다. 특히 트럼프는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미국 외교정책이었던 자유주의적 틀 전체를 무너뜨리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이 움직임은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이고 예상을 넘는 깊이와 범위로 이뤄졌다. 세계 경제는 분열됐고, 미국이 구축해온 모든 제도와 다자주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들도 경제적으로 공격받았다. 냉전의 윤곽과 지정학적 구조가 바뀐 만큼 이 변화를 표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 미국 중심의 동맹 체계에 균열이 일어났다고 보는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광란에 가까운 전환기다. 일본과 유럽, 또 여러 국가 중에는 미국과 동맹국이라는 사실에 기대고 의미를 두며 안정을 느꼈던 나라들이 있었는데, 이제 그 믿음은 모두 사라졌다. 이것은 단순히 동맹의 균열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동맹의 해체에 관한 문제다. 국가들이 군사적으로 자립하게 되는 과정에 관한 문제다. 그래서 여러 국가에서 많은 군비 증강이 일어나고 있다.”

-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으로 들린다.

“이미 줄어들었다. 트럼프는 힘을 우정과 신뢰의 힘이 아닌 물질적인 힘으로만 이해한다. 이는 미국이 가진 힘의 절반을 내던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구조적으로 보면, 서구식 세계질서는 이미 예전부터 종말을 향해 가고 있었다. 2025년은 대서양공동체의 우정과 신뢰가 무너지며 그 질서가 결정적으로 끝난 해이다.”

- 미국이 아닌 초강대국이 나타날까.

“이제 초강대국 개념 자체가 불가능해진 것으로 보인다. 초강대국이 되려면 최소한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0% 정도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중국과 인도를 포함해 여러 국가에 근대성(modernity)이 퍼진 지금, 어느 나라도 세계 GDP의 40%를 차지할 수 없다. 앞으로는 여러 강대국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미·중도 한동안 가장 큰 나라로 남겠지만 초강대국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초강대국은 세계를 지배하기 위한 적극적인 경쟁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미·중 모두 그런 역할을 원하지 않는다.”

- 그렇다면 중국은 어떤 목표를 추구하고 있나. 그 목표는 실현 가능할까.

“유일하게 정직한 답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다만 가능성을 추측해볼 순 있다. 나는 중국이 분명히 일종의 지역적 종주권을 원하며,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제국의 형태는 아니고 오히려 전통적인 조공 체제와 비슷하게 지역적 우월성을 인정받는 형태일 수 있다. 두 번째 목표는 자유주의적 세계질서를 약화하는 것이다. 중국은 인권과 민주주의 같은 자유주의적 가치가 중국 정부의 정당성을 약화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목표는 거의 달성된 것처럼 보인다. 이미 트럼프가 중국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자유주의를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 전 세계적 군비 증강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어느 수준까지 진행될까.

“군비 증강은 상당히 오랫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구조적 추진력이 상당하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유럽에서는 버림받았다는 감정이 뚜렷하다. 일반 대중과 정치 엘리트들 사이에는 재무장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다. 핵확산 가능성도 크다고 본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그런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 일본 등 여러 나라는 일종의 잠재적 핵무장 능력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또 다른 문제는 인공지능(AI)을 군비 경쟁의 일부로 볼 것인가인데, 답은 비교적 명확하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AI 기업과 군의 논쟁을 보면, 군은 ‘AI는 군사력의 핵심이라 AI 개발을 가능한 한 빠르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 AI 무기화를 규제할 수 있을까.

“규제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AI 개발을 추진하려는 집단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AI 개발을 위해 모두 상당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고 가능한 최소한의 제약 속에서 AI 개발을 빠르게 진행하길 원하고 있다. 물론 이런 발전에 제약을 두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는 개발을 제약하는데 상대방은 그렇지 않다면 결국 우리가 지는 거 아닌가’라는 질문을 계속 받게 될 것이다. 지금처럼 상호 관계가 우호적이지도 않고 신뢰도 없는 환경에서는 이 문제가 극복될 수 있다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 특정 자원과 항로를 무기로 삼는 모습도 보인다. 세계 경제질서의 모습은 어떻게 바뀔까.

“지금 우리는 어떤 다른 것보다 세계 시장의 가치를 앞세운 극단적 자유주의가 무너지고, 이에 대한 거대한 반발이 있는 상황에 부닥쳐 있다. 경제적 민족주의가 다시 운전석에 올라탄 것이다. 물론 모든 국가가 무역에 관심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중국은 여전히 무역에 관심이 있고, 이는 석유를 팔아야 하는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무역이 존재하려면 그에 맞는 규칙과 구조가 필요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제도들은 모두 서구 세계질서를 위해 또 서구 세계질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중 일부는 수정된 형태로 살아남을 수 있고, 일부는 대체돼야 할 것이며, 새로운 종류의 기구들도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이것은 브릭스(BRICS)와 같은 글로벌 사우스에게 하나의 기회다. 새로운 제도적·법적 구조를 구축하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당분간 어쩌면 수십 년 동안은 경제적 민족주의가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반발이 크고 또 정당하기 때문이다.”

- 국가 간 경쟁이 격화하면서, 기후위기 대응 등 협력의 목소리는 작아지고 있다.

“(서구 세계질서의 종말과 새 질서 형성이라는) 거대한 전환이 기후위기가 정점으로 향하는 그 시점과 정확히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이는 인류에게 닥친 엄청난 불운이다. 이 두 가지는 인과적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연결돼버렸다.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능한 한 강하게 힘을 모아야 하는 바로 그 시점에, 글로벌 거버넌스를 위한 제도들은 약해져 있는 것이다. 제도가 빠르게 재건될 가능성도 작다. 이것은 이중위기이며 매우 불행한 결합이라고 생각한다.”

- 새로운 국제협력 체제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내가 접한 가장 흥미로운 주장은 중견국, 작은 국가들조차도 협력을 유지하는 데 가장 큰 이해관계를 가졌다는 것이다. 특히 무역 같은 분야에서 그렇다. 그들은 자급자족할 수 없고, 또 자급자족하기를 원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런 국가들 사이에서는 ‘(제도에 대한) 의지가 있는 국가들의 연합’을 형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퍼져 있다. 이런 방식이야말로 아래로부터 세계 제도 구조를 다시 구축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만약 미국이 참여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참여할 마음이 생길 때까지 밖에 있도록 두면 된다. 물론 미국이 참여하는 것이 더 좋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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