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프랑스 동부 에비앙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과 이란 간 종전협상 양해각서(MOU)의 구체적인 문안이 공개되지 않은 가운데 미국과 이란 모두 승자를 자처하고 있다. 15일(현지시간) 각 외신에서 나온 평가를 종합하면, 이란이 이번 합의의 가장 큰 수혜국이라는 게 중론이다. 전쟁 당사국이자 휴전 협상국이기도 한 미국은 절반 미만의 성과(절반 이상의 실패)를 거둔 것으로 평가됐다. 미국을 등에 업고 중동 패권 재편을 꾀했던 이스라엘은 국내외에서 박한 평가가 쏟아졌다.
■호르무즈 통제, 경제 제재 완화···웃는 이란
현재까지 드러난 MOU 정보들을 종합하면 가장 큰 실익을 거둔 쪽은 단연 이란이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 동결자금 해제 및 제재 완화, 헤즈볼라 등 친이란 대리세력과의 충돌 중지 등 요구 조건을 모두 협상 테이블에 올렸고, 이중 상당 부분을 관철한 것으로 보인다.
가장 두드러진 성과는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이다. 이란은 유조선을 공격하거나 기뢰를 설치하는 등 비교적 간단한 군사적 조치로 전 세계 경제를 휘청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전쟁 초반 지도부 집단 사망으로 위태로웠던 통치 체제는 전쟁을 거치며 안정됐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바라던 체제 전복은 일어나지 않았다. 모즈타바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한 번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협상을 성사시켰다. 전쟁 내내 이란 지도부 내 갈등이나 반목은 돌출하지 않았다.
이란이 요구해온 경제 제재 완화도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이외에도 헤즈볼라 등 친이란 대리세력과의 공조를 국제사회에 각인한 것, 미국과 대치를 감당해낸 것 등이 이란의 성과로 평가된다.
■핵시설 파괴는 성과…미국은 뭘 얻었나
미국의 전쟁 성적표는 실점이 많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핵 프로그램 중단 등 미국이 주요 목표로 내건 사안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고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동결자산 해제 등 이란에 유리하게 협상안이 기울었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성과는 이란의 핵 개발 능력 억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15년과는 달리 이란의 주요 핵시설은 폐허가 됐고, 우라늄 농축은 20년 만에 처음 중단됐다”며 이번 전쟁의 성과를 평가했다. CNN은 “이란이 타격을 입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과거보다 핵무기 개발은 어려워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치솟은 물가와 침체된 경기는 감점 요소다. 뉴욕타임스는 “양국 합의가 중동의 충돌을 중단시킨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 가정과 기업을 강타한 고물가와 경제적 혼란은 멈추지 못했다”고 했다. 해협 봉쇄로 멈춰 섰던 유류 운송, 전쟁으로 파괴된 석유·가스 기반 시설을 복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CNN은 미군의 군사력 손실, 미·이스라엘 동맹 약화, 헤즈볼라 등 이란 대리세력 안보 강화, 트럼프 대통령 평판 손상 등이 미국이 입은 타격이라고 분석했다. 존 오서스 칼럼니스트는 블룸버그에서 “미국의 무모한 시도가 나이 든 노인 한 명을 죽인 것 외에 무엇을 얻었는지는 찾기 어렵다”고 했다.
■상처 뿐인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분쟁 당사국임에도 MOU 협상에 참여하지 않았고, 마지노선으로 그어둔 요구도 대부분 반영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은 전쟁을 시작하며 내걸었던 명분 중 성사된 것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이란이 합의했다는 이유로 전쟁을 멈춰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내몰렸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취임 후 가장 큰 정치적 위기에 몰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스라엘이 절멸을 목표로 삼았던 헤즈볼라 등 친이란 대리세력은 이번 전쟁을 거치며 공고해졌다. 이스라엘의 공격을 번번이 제지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 이후 “헤즈볼라와도 얘기를 나눠야한다”며 이스라엘의 숙적을 대화 상대로 인정했다. 동결자금 해제가 친이란 대리세력의 자금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스라엘의 최대 관심사인 이란 미사일 프로그램 종식은 MOU에 포함되지 않았다.
미국과의 동맹 관계는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대이란 협상, 레바논 전쟁 지속 여부 등을 놓고 전쟁 기간 중 여러 차례 충돌했다. 이스라엘 보수매체 마리브의 벤 카스핏은 “트럼프는 우리에게서 180도 돌아서서 네타냐후를 비롯한 우리 모두를 기찻길 아래로 던져버리려 하고 있다”며 네타냐후 총리의 사퇴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