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이 몇시간째 모니터 앞에 앉아 도로 사진을 들여다본다. 자율주행 AI를 학습시키는 일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 차선, 신호등을 하나하나 손으로 짚어 이름표를 붙인다. 같은 시각 챗봇이 내놓은 두 답변을 나란히 놓고 어느 쪽이 더 사람다운지 점수를 매기는 손이 있다. 자동차 공장에서는 한 숙련공이 늘 하던 대로 몸을 움직이는 동안, 그 손끝의 궤적이 고스란히 로봇의 학습 데이터로 옮겨 담긴다. 이 수많은 손들이 쌓여 AI는 비로소 똑똑해진다. 데이터 노동이다.
오픈AI는 챗GPT가 거친 말을 걸러내도록 가르치는 일을 케냐의 노동자들에게 시간당 1~2달러에 맡겼다. 자율주행 데이터에 이름표를 붙이는 일은 베네수엘라의 노동자들에게 시급 1달러로 외주화된다. 한국은 어떨까. 한 데이터 라벨링 업체에서는 회사가 시키는 대로 데이터를 분류하면서도 ‘프리랜서’로 계약된 노동자들이, 부당해고를 다투고 나서야 그 위장된 고용이 드러났다. AI를 만드는 이러한 노동은 가치사슬의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위태롭게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정부가 그리는 AI 국가전략 어디를 보아도 노동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최근 발표된 ‘인공지능 기본계획’은 데이터·컴퓨팅·반도체·전력을 한데 묶은 ‘AI 고속도로’ 구축을 첫 번째 전략으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 전력 인센티브와 세액공제를 늘리고, 반도체, 데이터센터, 로봇을 하나의 순환으로 이어 한국을 AI 공급망의 거점으로 세우겠다는 그림이다. 글로벌 공급망이 다시 짜이는 지금, 반도체, 전력망, 정밀 제조를 두루 갖춘 한국이 그 중심에 설 수 있다는 말에 설득될 이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야심 찬 순환의 그림 안에서 ‘사람’의 자리는 둘뿐이다. AI를 학습시키는 자원이거나, AI가 대체할 대상이거나. 데이터를 분류하는 노동자도, 데이터센터를 짓는 노동자도, 공장의 숙련공도, 전환을 함께 만들어가는 주체로서의 노동자도, 끝내 보이지 않는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라는 ‘인프라’ 위에서 돌아갈 모델은 사람이 만든다. 분류하고 평가해 다듬은 데이터는 저절로 생겨나지 않으며, 정부가 강조하는 ‘독자 AI 모델’조차 그 노동 없이는 한 줄도 배우지 못한다.
데이터센터 주변의 일자리도 그렇다. 그 가치는 주변 산업-건설과 시공, 냉각 설비, 유지·보수-에서 나온다고 강조된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가 다단계 하청과 비정규직이 가장 짙게 내려앉은 곳이다. 그 일자리의 질을 묻지 않는다면, 비수도권 데이터센터가 지역을 살린다는 그림은 절반일 뿐이다.
제조 현장에 AI를 들이는 피지컬 AI 구상은 어떨까. 자동차 공장과 조선소가 로봇의 실험대가 된다는 것은, 현장 노동자가 익혀온 작업이 데이터가 되어 로봇을 가르치고, 로봇이 다시 그 작업장을 바꾸어놓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때 노동자는 무엇이 되는가. 손끝의 숙련을 데이터로 내어주는 자원인가, 아니면 함께 의논하는 주체인가.
나는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데이터 노동의 실태부터 파악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누가, 어떤 신분으로, 얼마를 받고 그 일을 하는지조차 우리는 알지 못한다. 데이터 노동 플랫폼에 최소한의 보수와 작업 기준을 세우고, 이들이 법의 보호 바깥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고용 지위에 ‘사실 우선의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둘째, 공적 지원에는 일자리의 질이라는 조건을 함께 묶는 일이다. 세액공제와 전력 인센티브라는 공공의 돈이 들어가는 데이터센터라면, 그 대가로 정부는 고용의 질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직접고용의 비율, 다단계 하청의 단계 제한, 그 지역 사람을 채용하고 훈련시키는 조건을 유치 협약에 적어 넣는 것이다. 공공의 돈이 사적 이윤만 남기고 떠나지 않게 하는 장치다.
셋째, 전환을 설계하는 자리에 노동자를 부르는 일이다. 로봇과 AI가 작업장을 바꾸어갈 때, 처음부터 현장 노동자의 경험과 목소리가 스며들어야 한다. 무엇을 기계에 맡기고 무엇을 사람이 쥘지, 자리를 옮기게 될 노동자는 어떤 새로운 몫을 맡을지를 노사가 협의해야 한다. 몸에 새겨온 노동자의 손끝 감각이 피지컬 AI가 배워야 할 가장 값진 데이터라면, 그 주인을 설계의 자리로 부르는 것은 시혜가 아니라, 사람과 더불어 일하는 로봇을 만드는 길이다.
노동은 그저 AI에 대체될 대상도, AI를 학습시킬 자원도 아니다. 결국 국산 AI든 AI 강국이든, ‘사람’이 만든다. 전환을 함께 만들어갈 노동자다.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