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나라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무려 10%가 넘을 것 같다. 전망이 업데이트될 때마다 성장률 전망치는 가팔라진다. 2월 한국은행은 올해 실질성장률을 1.8%에서 2.0%로 상향 조정했다. 5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5%, 6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6%, 씨티은행은 3%까지 올려 잡았다.
실질 3%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건 명목이다. OECD는 명목성장률을 약 10%, 씨티은행은 15%까지 올려 잡았다. 명목성장률은 GDP 증가율이고, 실질성장률은 물가 상승 효과(디플레이터)를 뺀 값이다. 실질이 3%인데 명목이 15%라면, 올해 물가가 10% 넘게 오른다는 뜻일까?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은 2%대다. 중동발 고유가를 감안하면 양호한 편이다. 그런데 수출가격까지 반영하는 전체 물가, 즉 GDP 디플레이터는 씨티 기준 10%를 넘는다. 소비자물가와 디플레이터의 괴리가 이례적으로 크다.
이 괴리의 핵심은 반도체다. 특히 HBM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수출가격 상승이 GDP 디플레이터를 끌어올리고 있다. 올해 하이닉스 1분기 영업이익률은 72%에 달했다. TSMC는 물론 엔비디아보다도 높다. 하이닉스의 대표 수출품인 HBM은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이다.
그렇다면 실질성장률이 중요할까, 명목성장률이 중요할까. 국민의 실제 삶에는 소비자물가와 실질성장률이 더 직접적이다. 그러나 예산과 재정에는 명목성장률이 더 직접적으로 작용한다. 명목이 높아지면 세입은 늘고 국가채무비율은 낮아진다. 그래서 경제전문가 눈에 올해 한국 경제가 ‘반도체 슈퍼사이클 덕분에 양호한 수준’이라면, 재정전문가 눈에는 ‘초울트라 하이퍼’ 호시절이다.
세수를 보자. 올해 본예산 국세수입은 390조원인데 최소 50조원은 더 들어올 것 같다. 내년 국세수입은 500조원을 가뿐히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본예산보다 100조원 이상 많다. 국민연금 적립금도 1500조원대에서 1900조원대로, 한 해에만 400조원 가까이 불었다.
이렇게 늘어난 돈을 어떻게 쓸까. 행복하지만 어려운 고민이다. 이에 따라 미래 재정여력과 성장경로가 바뀐다. 그런데 해법부터 갈린다. 올해 기획재정부는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쪼개졌는데, 재경부는 국부펀드를, 기획처는 미래대응기금을 말한다. 기싸움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이런 견제와 균형이 기재부를 쪼갠 이유다. 그리고 이번 논쟁에서는 기획처 쪽이 더 설득력 있다.
기금을 영어로 옮기면 펀드다. 그러나 둘은 다르다. 닭과 치킨이 다른 것과 같다. 닭을 튀기면 치킨이 되듯, 펀드를 정부 재정에 담으면 기금이 된다. 펀드는 투자수익률이 관건이다. 그런데 늘어난 세수를 굳이 이자놀이에 쓸 이유가 있을까. 올해 국채 발행액만 100조원이 넘는다. 비싼 이자를 내며 국채를 발행하면서, 펀드 수익률을 기대하는 구조는 직관적으로도 어색하다. 실제로 아일랜드는 폭증한 법인세수를 ‘미래아일랜드 펀드’에 넣었다가 운용 인프라가 부족해 저수익 자산에 돈을 묶어둔 적이 있다.
가장 좋은 건 미래 성장동력을 키우는 인프라 투자다. 이자수익보다 부가가치와 효율을 만드는 투자가 미래세대에 더 큰 자산이다. 고기를 주는 것보다 고기 잡는 도구가 낫다. 특히 에너지 효율화와 같은 에너지 인프라 투자는 생산성을 높이는 자산이다. 1조원을 투자해 6~7년 안에 회수할 만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면, 그것은 웬만한 금융수익보다 낫다.
둘째는 소득불균형 완화다. 최근 K성장이 K자형 성장으로 이어지면서 소득 격차가 커지고 있다. 다만 소득불균형 완화를 위해 새로운 제도를 만들 필요는 없다. 빈곤층을 위한 기초생활보장제도와 차상위계층을 위한 근로장려세제를 더 두껍게 하면 된다. 정치적으로는 티가 덜 나지만, 정책적으로는 더 효율적이다.
적절한 투자처를 찾기 전까지 남는 돈은 펀드보다 기금 형태로 운영하는 것이 낫다. 기금은 국회 심의와 정보공개가 따른다. 호주가 광산 흑자를 미래펀드로 전환해 장기 운용에 성공했지만 이후 정권의 정책 의제가 운용 원칙을 흔드는 문제도 드러났다. 국회 심의가 필요한 이유다. 특히, 공자기금 예탁으로 국채 발행액을 조절해, 지출 전에 비싼 국채 이자를 굳이 물지 않아도 된다.
이번 논쟁에서는 재경부보다 기획처가 맞다. 국부펀드보다, 기금으로 국채 발행을 조절하고 미래 인프라에 투자하는 방식이 더 바람직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돈을 굴리는 기술이 아니라, 돈을 제대로 쓰는 재정의 기술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