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갠 이불을 장롱에 넣으면서 이불 들어 올리는 일마저도 힘에 부쳤던 때가 떠올랐다. 묵직한 아령을 팔 바꿔가며 몇 순배 들고 철봉에 매달려 낑낑댄 날이 한참 지난 후에야 옷 갈아입는 일이 다소 편해졌다. 몸이 쓰지 않는 근육 다발의 크기를 줄여 운신의 폭을 제한하는 현상은 주변에서 쉽게 관찰된다. 아들하고 축구공 주고받다 뚝하는 소리에 놀라 장딴지에 야구공을 맞았나 착각했던 20여년 전의 일도 그런 경우일 것이다. 정형외과 의사는 진통제를 처방하면서 “조기 축구 하는 중년들이 근육 파열로 한 해 열 명은 찾아옵니다. 한동안 아프실 거예요”라고 지나가듯 말했다.
팔을 들지 못할 만큼 어깨가 아픈 증상은 어깨 관절을 감싸는 주머니에 염증이 생기고 굳어지면서 발생한다고 한다. 이런 증상에 ‘오십견’이라는 용어를 부여한 걸 보면 남녀를 불문하고 중년의 어깨 통증이 흔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염증은 왜 생겼을까? 그리고 근육이 굳어진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외부에서 우리 몸에 없던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면역세포가 눈을 부라리며 이들과의 일전을 벼른다. 그러나 면역세포는 자신의 몸에서 비롯했더라도 정상에서 벗어난 세포라면 가차 없이 ‘남(nonself)’으로 여긴다. 이를테면 조직 간 협약을 깨고 영양소를 낭비하면서 무한증식하려는 암세포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니 어깨 관절낭에 염증이 생겼다면 분명 뭔가 이상이 생긴 세포를 노려 면역세포가 활발히 움직인 결과일 것이다. 이는 피부에 상처가 났을 때도 벌어진다.
피부는 성(城)과 같아서 이웃하는 세포 사이에 빈틈이 없어야 한다. 칼에 베이거나 찰과상이 생기면 피부 성곽 일부가 무너진 격으로 정상 세포가 다치거나 죽어 나간다. 그러면 면역계 대식세포가 나서 이들을 깨끗이 먹어 치우고 주변의 피부세포를 상처 부위로 끌어들인다. 피부세포를 받쳐줄 섬유아세포도 마찬가지다. 상처를 낫게 하려면 주변의 세포가 부산히 움직여야 한다. 이는 면역계 세포가 ‘서둘러 움직여’ 성을 재건하라는 신호물질을 분비한 덕분이다. 한곳에 터를 잡으면 움직임이 없는 피부 성곽의 세포가 신호물질에 반응해 자신의 성격을 바꾸고 이동성을 얻는 것이다. 암세포가 전이해 자신의 터를 바꿀 때도 같은 일이 진행된다. 생물학자들이 상피-중간엽 전환(epithelial-mesenchymal transition)이라고 부르는 과정이다.
짐작하겠지만 상처 복구 과정이나 전이암에서 중간엽 전환이 관측된다. 중간엽의 특징은 움직임에 있다. 피부세포가 움직이면 자신의 본디 성질을 잃는다. 따라서 상피세포 벽돌이 움직여 무너지면 피부 방어 기능은 가뭇없이 사라진다. 게다가 중간엽 세포는 콜라겐 같은 단백질을 만들어 벽돌을 단단히 붙들어 매는 접착제 역할도 맡는다. 그러므로 중간엽에서 접착물질을 과도하게 분비하면 조직은 부드러움을 잃고 딱딱해진다. 어깨 근육이 굳어지는 데에도 이런 저간의 사정이 숨어있을 것이다.
굳어진다는 뜻의 섬유화는 간이나 폐의 기능 손상에도 쓰이는 용어다. 간이 섬유화될 때도 피부에서와 마찬가지로 상처 복구가 일어난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일이 반복되었다는 데서 불거진다. 바이러스나 알코올을 처리하느라 일상적으로 상처가 반복되면 일시적으로 치유를 마치더라도 종내에는 흉터가 남는다. 간에 생긴 커다란 흉터 탓에 간세포가 터를 잃고 그 자리를 콜라겐 같은 섬유가 대체하면 간은 그야말로 폐허가 된다. 영양소를 받아들이고 독성물질을 제거하는 일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미국의 생명공학 스타트업인 알토스 랩을 이끄는 후안 벨몬트는 중간엽이 기승을 부리는 일이 노화의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2026년 5월, ‘셀’에 실린 논문에서 벨몬트는 노화의 14가지 징후를 한데 묶어 중간엽 변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도입했다. 항상성을 잃어가는 노화의 주된 특징인 유전체 불안정성이나 텔로미어 마모 같은 세포 과정을 들여다보면 곳곳에서 지속적인 중간엽 변이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화는 곧 세포 정체성의 상실이다. 피부와 혈관이 딱딱해지고 간과 폐가 탄력을 잃는다.
하지만 늘 그렇듯 희망은 있다. 과학자들은 노화를 지연시키거나 되돌릴 방법을 하나씩 찾아낸다. 운동이 그중 낫다. 간과 심혈관을 해치는 음식을 먹지 않는 것도 좋다. 대장에 사는 세균의 식사를 챙기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세포 정체성 회복을 건강이라고 부른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