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 10년 만의 장편 ‘아코디언’ 출간
천명관 작가가 17일 서울 마포구 창비에서 열린 장편 <아코디언>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래>를 쓸 때는 내가 뭘 쓰는지도 몰랐다. 뻗어나가는 상상력을 그냥 두었다면, 이번 작품은 불평등과 착취 등 현실을 담고 있다 보니 상상력을 억제하고 안에 가둬두려고 노력했다.”
소설가 천명관은 17일 서울 마포구 창비 서교빌딩에서 열린 신작 장편 <아코디언>(창비)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번 책은 2016년 발표한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이후 10년 만에 발표하는 장편 소설이다. 2012년 창비 블로그에 ‘길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작품이나, 단행본으로 묶으며 상당 부분 개작했다.
195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거리에 내몰린 아이들의 생존 투쟁을 다룬다. 주인공은 피란길에 엄마의 손을 놓치는 바람에 고아가 된 소년 ‘동이’다. 동이는 위선적인 ‘양 목사’가 거느리는 앵벌이 움막에 정착한다. 이곳에서 앞을 못 보지만 맑은 목소리를 가진 연이, 걷지 못하지만 비상한 기억력을 가진 ‘거북이’ 등과 어울린다. 이들의 성장담이 동이가 고물 덩어리 가운데서 주운 아코디언과 함께 진행된다. 소설엔 음악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데, 소설의 각 장에 달린 제목도 옛 대중가요인 ‘목포의 눈물’ ‘홍콩 아가씨’ ‘베사메무쵸’ 등이다.
천명관은 아코디언을 소재로 한 이유에 대해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집시의 시간>을 언급하며 “아코디언 소리에는 집시적인 아름다움이 있다”면서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하는 데 적합한 악기라고 설명했다. 아이들을 주요 등장인물로 다룬 이유로는 “시대의 희생자로서, 적나라한 폭력의 피해자로서 그려내는 데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시대적 배경을 한국전쟁 직후로 상정한 것에 대해서는 “분단이 고착화된 사회에서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권력을 잡는 사람들이 있고 그에 의해 피해받는 이들도 여전하다는 점에서 지금의 한국 사회도 한국전쟁이 남긴 영향 아래에 있다”고 밝혔다.
작품을 먼저 읽은 독자들은 소설을 읽으면 영상이 머릿속에서 떠오른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글을 쓸 때 카메라의 움직임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편”이라고 말했다.
2004년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은 <고래>는 그에게 ‘천재’라는 찬사를 안겨줬고 2023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소설가로서 그의 경력은 화려하지만, 창작 인생의 또 다른 축이었던 영화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천명관은 젊은 시절 영화 시나리오를 썼고 연출부에서 일한 경험도 있다. 50대에 감독으로 데뷔해 영화 <뜨거운 피>를 연출했다. 그는 “30대와 50대, 인생의 총 20년 세월을 영화를 하면서 보냈다. 적지 않은 분량의 노동을 했는데, 결과는 겨우 영화 한 편”이었다며 “후회하진 않지만, 가끔은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