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베르사유 궁전 만찬장에서 미·이란 종전 양해각서(MOU)에 서명하고 있다. 백악관 X
미국과 이란이 당초 일정보다 이틀 빠른 17일(현지시간) 종전 양해각서(MOU)에 서명했다. 14개항의 합의문도 곧바로 발효됐다. 합의문의 큰 틀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즉시 개방과 핵무기 포기를 약속하고, 이에 미국은 이란 동결자산 해제와 재건 자금 조성, 원유 수출 허가 등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으로 구성됐다. 양국이 향후 60일간 후속 실무 협상을 끝낸 뒤 종전이 공식화하지만, 합의 내용을 보면 미국의 완패라고 할 만하다.
MOU에서 이란은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을 것을 재확인한다’고 했다. 보유 중인 농축 우라늄의 처리 방식 등은 추가 협상에서 다뤄진다. 하지만 ‘핵무기 비제조 약속’은 2015년 버락 오마바 행정부 때 체결한 이란 핵합의(JCPOA)의 ‘핵무기 추진·개발·획득 금지’ 조항과 유사하다. 또 이란은 현재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원국이자 핵무기 개발을 금지하는 파트와(종교적 가르침)를 유지하고 있어 비핵화 선언이 새삼스럽지도 않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 때인 2018년 JCPOA를 탈퇴하지 않았다면 이란이 지금처럼 60%의 농축 우라늄 440㎏을 확보하지 못했을 수 있다.
반면 이란은 전쟁 이전부터 줄기차게 요구해온 동결자산 해제, 이란산 원유·석유화학 수출 제재 면제 등을 얻어냈다. 최소 3000억달러(약 450조원) 규모의 이란 재건·개발 자금도 확보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60일간 무료 개방하지만, 이후 이란·오만이 통항 체제를 설정하도록 했다. 이란은 통항료를 받아 통제권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인데, 이는 국제법상 ‘항행의 자유’ 권리에 위배된다. 그럼에도 미국의 묵인으로 현실화할 경우 이란이 핵보다 더 강한 무기를 얻게 되는 셈이다.
트럼프는 MOU에 대해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열고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하도록 했다”며 “우리가 달성하고자 했던 모든 목표, 그 이상을 이뤄냈다”고 했다. 그러나 개전의 명분은 미약했고, 전쟁 목표가 계속 바뀌면서 미국은 출구전략을 찾지 못했다. 결국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전쟁 장기화에 따른 비판이 커지자, 이란에 대규모 경제적 이익을 주며 조급하게 전쟁을 마무리하게 된 것이다.
트럼프는 이란과의 핵 협상 와중에 이번 전쟁을 시작했다. 유럽의 동맹국들은 미국이 상의 없이 벌인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세계 경제는 유가 급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내세우지만 이번 전쟁은 미국의 위상, 리더십, 영향력을 약화시켰다. 또 냉전 이후 30여년간 지속된 미국 중심의 패권적 질서가 저물고 있음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미국은 앞으로 다시는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명분 없는 전쟁을 벌이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