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가 두둑해지면 쓰고 싶은 데가 많아지는 법이다. 요즘 정부는 소위 초과세수 활용을 두고 들떠 있다. 익히 알듯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반도체 특수 덕에 법인세를 비롯한 정부 세수가 크게 늘었고,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증가 세수를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를 두고 즐거운 고민을 하는 것이다.
금년도 세수는 지난 추경 당시 예측치보다 15조원 이상, 최대 20조원 정도가 더 걷힐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100조원 이상이 더 걷힐 것으로 예측된다. 그리고 지금의 전망대로라면 이런 호황은 후년에도 이어질 것이다.
사실 초과세수라는 용어가 썩 적절하지는 않다. 금년도 세수 증가는 예상치 못한 것이니 예측치를 초과한 세수가 맞다. 하지만 내년과 후년에 기대되는 대규모 세수 증가는 이미 예상한 것이니 그냥 기대한 바대로의 넉넉한 세수일 뿐이다. 엄밀히 따지면 초과세수와 넉넉한 세수의 사용법은 같지 않다. 세계잉여금으로 남겨지는 초과세수 사용에는 제약이 붙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대동소이하니 ‘초과’와 ‘넉넉’의 구분 없이 늘어나는 세수 활용 방안을 궁리하면 된다.
법인세, 소득세, 부가가치세 등 내국세는 법에 따라 대략 6:2:2의 비율로 중앙정부, 지방정부, 지방교육청에 배분된다. 그래서 반도체 특수로 늘어나는 세수 역시 60%만 중앙정부가 가져가고 나머지 40%는 지방정부와 지방교육청 몫이다. 요즘 언론에 등장하는 여유 재원 활용 방안들, 가령 미래대응기금 조성, 한국형 국부펀드 혹은 국민 배당금(!) 등은 모두 중앙정부의 활용 방안이다. 중앙정부 여유 재원 활용 방안은 여기저기에서 이런저런 주장을 하고 있으니, 이 칼럼에서는 다른 주체, 그중에서도 지방교육청의 활용 방안을 따져보자.
반도체 특수로 생긴 엄청난 여윳돈
지방선거가 끝난 지 보름여 지났다. 교육감 당선인들은 업무 준비에 바쁠 것이다 반도체 특수 덕에 늘어나는 재원은 임기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큰 선물일 것이다. 이들은 늘어난 재원을 어디에 쓰고 싶을까, 혹은 무엇에 쓰는 게 바람직할까.
솔직히 교육감 입장에서는, 급증하는 재원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돈이 많아도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정부지출 각 분야 중 재정이 가장 풍족한(혹은 방만한) 분야는 단연 초중고 교육이다. 초중고 교육 재정 대부분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담당하는데, 이는 내국세의 20.79%로 고정돼 있다. 저출생으로 학생 수는 감소하는 반면 내국세는 꾸준히 증가하기 때문에, 학생 1인당 교육비는 매년 빠르게 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유례없이 많이 지출하는 사교육비는 논외로 하고 공교육비만 따져도, 대한민국의 초중고 학생 1인당 교육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이다. 반도체 특수 없이도 이미 풍족하고,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앞으로도 훨씬 풍족해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반도체 특수로 인한 예상치 못한 큰돈이 얹어지게 된 것이다.
진작부터 예산당국은 지방선거 이후에 교육 재정 체계를 손볼 작정이었고 교육계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결코 교육 재정이 많지 않다고, AI가 시대정신이 된 작금에 학생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AI를 활용한 교육 혁신을 이끌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재원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등 교육 재정 개편을 막을 논리를 궁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반도체 특수로 인한 엄청난 재원이 들어오게 되었으니, 교육 재정 감축을 저지할 논리가 궁색해지게 된 것이다.
누가 어떻게 봐도 초중고 교육 재정은 넉넉하다. 그렇지만 이게 교육 재정을 줄여야 할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 1위의 교육비에 걸맞게, 우리 아이들에게 세계 최고의 교육이 제공된다면 전혀 시비할 거리가 아니다. 오히려 AI 대전환 시대에, 필요하다면 더 많은 재원을 쓰시라고 격려하고 응원할 일이다. 문제는 그 많은 돈에 상응하는 수준의 교육이 제공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가성비가 열악하고 가심비가 극악하다. 그래서 초중고 교육에 더 이상의 재원을 투입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고 비싼 비지떡만 양산할 뿐이라고 여긴다.
최고의 공교육 만드는 기회로 활용
그래서 임기를 시작하는 교육감분들께 제안한다. 반도체 특수로 인한 여유 재원을 반전의 기회로 활용하시라고. 교육 재정은 꽤나 경직적이다. 교직원 인건비, 시설 유지비, 교육 기자재 보급비 등 이미 용처가 정해져 있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방만한 구석이 매우 많다. 그럼에도 대부분 경직성 경비로 잡혀 있는 탓에, 단단히 작심하고 거세게 휘젓지 않는 이상 대규모 재원을 별도로 마련하는 게 쉽지는 않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엄청난 여윳돈이 생겨나게 되었다.
제발 이 돈만은 흥청망청 혹은 흐지부지, 여기 뭉텅 저기 찔끔 나누지 않았으면 좋겠다. AI 시대를 선도할 역량 키우기도 좋고, 서울 강남의 사설 학원과 클럽 뺨치는 럭셔리한 방과후 학교 운영도 근사하겠다. 뭐가 됐든 분명한, 어쩜 파격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여기에 ‘몰빵’하는 게 낫겠다. 그리고 들인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여길 만한 성과를 내길 바란다.
반도체 특수에 따른 여유 재원은 몇년 후에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학령인구 감소 및 점증하는 내국세 덕에, 그때쯤이면 이를 상쇄할 만한 재원이 생긴다. 이번에 여유 재원으로 확실한 성과를 보인다면, 앞으로 늘어날 재정도 교육 성과 향상에 제대로 쓰일 것이라는 믿음을 줄 수 있다. 이리되면 교육 재정 감축 주장은 일축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를 위한 유용한 팁 하나를 전한다. 상세한 지출 및 성과 공개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어디에 얼마를 무슨 목적으로 지출했는지, 해당 사업의 과정과 성과는 어떠한지를 꼼꼼하고 투명하게 알리는 것이다. 이를 위한 웹사이트를 만들고 여기에 모든 정보를 공개하자. 그리고 누리꾼의 활발한 제안과 토론의 장도 마련하자. 그리되면 최소한 오용과 남용은 없앨 수 있고, 사업 담당자는 성과 향상에 매진하게 된다. 나는 이번의 여유 재원 활용이 우리 아이들에게 최고의 공교육을 제공하는 든든한 기반이 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