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둥글다. 그러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나. 하루를 저녁으로 마감하고 밤으로의 긴 여행을 떠날 수 있겠나. 세상이 어질러놓은 오늘치의 얼굴을 어둠으로 씻고, 두터운 잠에 취해 꿈의 위로를 받을 수 있겠나. 도착하지 않을 외딴 새벽에 희망을 걸 수 있겠나.
지구가 둥글지 않다면 밤낮이 따로 없어 그날이 또 그날. 시간이 제때 흐를 수 있겠나. 태산이 높다 해도 하늘 아래 뫼이듯 아무리 세상이 넓어도 끝나는 곳은 있다. 천하가 편평하다면 언젠가 그 벼랑에서 벼락같이 떨어져야 한다. 어디로 떨어지려나?
지구가 둥글기에 축구공은 지표면에 맞물려 굴러간다. 한편, 지구가 둥글더라도 공처럼 반반했더라면 어쩔 뻔했나. 다행이다, 지구가 몹시도 울퉁불퉁한 산을 바다에서 뽑아 흘립해두기에 세상은 무궁해진다. 무성한 꽃과 무수한 잎이 있어 그 표면적은 최대치가 된다. 지구가 둥근 덕분에 포물선 같은 꼭대기에 접근하면, 높고 넓고 깊음이 모두 저 아래 골짜기로부터 세상으로 흘러나가는 게 보인다. 지구가 둥글지 않았다면 나무도 발 대신 뿌리를 내렸을까. 휘영청 저 달이 저렇게 둥글어졌을까. 고독한 어느 날, 달을 담은 눈에서 달의 딸처럼 눈물이 떨어졌을까.
지구가 둥글지 않다면 접시 같은 어깨 위에 둥근 머리를 얹고 오늘을 건널 수 있겠나. 그러다가 졸지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전혀 다른 시간이 찾아온다. 그럴 때 무덤은 둥글게 부풀어 오를 수 있겠나. 지상의 모든 존재는 그 어디로 넘어가야 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존재함이란 곧 공처럼 끊임없이 굴러가는 것이니 지구가 둥글기에 가능한 변화이지 않겠는가. 아, 정말 어쩔 뻔했는가, 지구가 둥글지 않았다면.
오늘 점심은 설렁탕이다. 식당은 초승달처럼 휘어진 숟가락을 사용하느라 저마다 분주하고, 월드컵 중계방송이 한창이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찾아오면 그건 둥글게 온다는 것. 저 움푹한 허기를 달래고 배가 부르면 왜 이리 좀 슬픈가. 마지막 국물은 숟가락이 아니라 그릇을 들고 기울여 들이켠다. 지구의 한구석에서 별똥별을 줍는 기분으로 투박한 뚝배기를 받들면 어김없이 따라붙는 이 묵직함. 아, 정말 지구가 둥글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