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박쥐
요시 요벨 지음 | 조은영 옮김
어크로스 | 464쪽 | 2만6000원
눈처럼 하얀 털을 가진 온두라스흰박쥐는 나뭇잎을 접어서 은신처를 만들어 무리 생활을 한다.
ⓒMerlin Tuttle.org
우리는 오랫동안 체스를 두는 침팬지나 그림을 그리는 코끼리처럼 인간을 닮은 동물에서만 천재성을 찾아왔다. 하지만 인간이 미처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인류가 도달하지 못한 감각의 영역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룬 존재가 있다. 바로 박쥐다. 신간 <천재 박쥐>는 어둠 속에서 진화한 이 다재다능한 생명체의 비밀을 밝히는 과학 논픽션이다.
박쥐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요시 요벨 교수는 20년 넘게 밀림과 사막을 누비며 박쥐의 진짜 얼굴을 추적해왔다. 저자가 안내하는 세계는 놀라움으로 가득하다. 박쥐는 뛰어난 ‘반향정위’ 능력으로 0.1㎜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감지한다. 사냥에 실패한 동료에게 기꺼이 피를 나누어주며 의리를 발휘하고, 인간의 아기처럼 ‘옹알이’를 거쳐 집단 고유의 방언을 학습하는 고도의 사회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
책은 우리의 통념을 깨는 진화의 수수께끼도 함께 들려준다. 유전자 분석 결과 박쥐는 ‘날아다니는 쥐’가 아니라 오히려 소나 개에 더 가깝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5200만년 전 박쥐 화석을 둘러싼 진화 논쟁, 비행과 반향정위 중 무엇이 먼저 발달했는지 논하는 학계의 공방도 흥미롭다.
팬데믹을 거치며 위험한 동물로 낙인찍혔지만 박쥐는 하룻밤에 수천마리의 해충을 잡고 식물의 수분을 돕는 생태계의 조용한 파수꾼이다. 친환경 에너지의 상징인 풍력발전 터빈에 매년 수백만마리가 희생되는, 안타까운 현실에 처한 동물이기도 하다.
박쥐에 관한 책이면서 동시에 인간 중심적 시선에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좁은 시야를 넘어 전혀 다른 감각과 질서로 이루어진 박쥐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나면, 어둠 속을 비행하는 작은 날개를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