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의 정치적 풍경은 기이하다. 6·3 지방선거 이후 거대 양당은 선거 결과를 놓고 제대로 된 토론이나 평가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민심을 겸허하게 수용한다는 외면상의 표현과는 달리 양당 모두 당권 투쟁에 몰입하는 모습이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거기에 오늘로 20일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는 참정권 침해 항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사상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촉발된 참정권 침해 항의 시위는 한편으론 선관위 개혁을 주요한 과제로 끌어올렸지만, 한편으로는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의 본거지로 탈바꿈하고 있어서 걱정이다.
이런 것이 씁쓸한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현주소다. 계엄과 내란을 광장에서 막아낸 자랑스러운 역사를 만들어낸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최소주의 민주주의’였다. 최소한의 민주적 장치마저 파괴하는 것에 분노한 시민들이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광장은 오색의 빛으로 빛났고, 여의도와 남태령, 한남동에서 동짓날 한파를 이기며 연대의 광장을 만들어냈다. 광장에선 유난히 “우리”를 많이 이야기했다. 공동체가 파괴된 사회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려는 열망이 모인 자리였다.
박종철기념사업회가 열고 있는 ‘박종철 시민학교’에 나온 ‘남태령동지회’의 활동가는 조직도 없는 상황에서 2030 여성들이 어떻게 모일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세계가 무너졌다는 위기감”이 있었다고 했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이마저도 무너진다는 위기감이 사람들을 광장에 나오게 했고, 그곳에서 서로 다르지만, 비슷한 요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이 사회의 소수자성을 발견하고, 그들의 처지에서 나오는 요구들을 쏟아냈다. 그러므로 그 광장에서 집약된 ‘사회대개혁 시민선언’은 새로운 사회계약이었다. 처음으로 대중들 앞에서 발언한다는 사람들은 광장이 닫힌 뒤에도 투쟁하는 소수자들, 약자들의 현장을 찾아 연대활동에 나섰다.
이번에도 무시된 광장의 요구
그런데 광장 이후에는 광장의 요구가 무시됐다. 2016~2017년 촛불광장과 2024~2025년 빛의 광장에 모인 시민들을 극찬했던 더불어민주당은 시민들의 힘으로 집권한 뒤 정작 광장의 요구와 약속을 외면했다. 심지어 그것은 이전 대표가 한 약속이라면서 거리를 두기도 했다. 2030 여성들을 상찬했지만, 이들이 요구한 성평등 정책과 차별금지법 제정은 없던 약속이 되어버렸다. 오만한 권력과 오만한 정당을 향한 유권자들의 평가는 결국 투표장에서 내려졌다. 그 결과가 6·3 지방선거였다.
내년이면 6월 민주항쟁 40년, 노동자대투쟁 40년을 맞는다. 거대한 항쟁으로 군사독재정권을 물리치고 민주화의 물꼬를 튼 위대한 시민항쟁이었다. 하지만 1987년 당시에도 6·29 선언으로 대통령직선제를 얻은 당시 야당은 여당과 밀실에서 개헌안을 합의했다. 당연히 그 개헌안에는 노동자와 민중의 간절한 요구는 제외되었다. 그 결과로 87헌법에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사회권)가 거의 반영되지 못했다.
그 헌법에 따라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절차적 민주주의는 진전했을지 몰라도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고, 이제 불평등은 기정사실로 고착화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코스피는 9000을 넘어갔지만, 그럴수록 불평등의 현실은 더욱 심각하게 다가온다. AI가 도입되면 될수록 일자리는 줄어든다. 직장조차 구하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무엇을 약속할 수 있는가.
민주화 40년인데, 아직 이 정도라면 심각하다. 사회학자 조형근은 최근에 나온 책 <광장비판>에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주의적 접근을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불평등 축소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최우선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 광장에 나선 약한 자들이 힘껏 외친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고 썼다.
질문할수록 민주주의는 또렷해져
최소주의 민주주의마저 위협당하는 상황이 오면 광장에 ‘우리’는 모이겠지만, 이제 우리의 민주주의는 최대 민주주의로 향해야 한다. 그리고 그 민주주의는 새로운 민주주의여야 한다. 그 민주주의는 누가 정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박종철 시민학교’의 모토는 “성급한 결론보다 날카롭게 벼려진 질문을”이다. 광장에서 집약된 시민선언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사회계약이었다. 이에 기초해서 묻고 또 묻자. 우리의 질문이 날카로워질수록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는 더욱 또렷해지리라 믿는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