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인플루엔자(AI) 등의 영향으로 계란 가격이 고공행진 중인 23일 서울 한 마트에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행복상생란’ 매진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한수빈 기자
식음료와 축산물 가격이 일제히 치솟으며 서민 밥상에 비상이 걸렸다. 중동전쟁과 고환율로 인한 석유류와 원자재 가격 급등이 비석유류 제품에 본격적으로 전이되고 있고, 지난 겨울 발생한 가축 전염병 영향으로 닭고기·돼지고기 가격까지 뛰고 있다. 가뜩이나 고금리와 내수 부진으로 민생 경제가 어려운데 장바구니 물가까지 상승하면서 서민들 삶이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식음료와 외식업체들이 줄줄이 제품가를 인상했다. 롯데칠성음료는 오는 26일부터 칠성사이다와 펩시콜라 등 주요 브랜드의 출고가를 평균 5.3% 인상하기로 했다. 11개 외식 브랜드를 운영하는 더본코리아와 메가MGC커피, 이디야커피 등 골목상권의 대표적 외식 브랜드들도 이달 들어 일제히 제품 가격을 올렸다. 지난 17년간 가격을 동결해온 동대문엽기떡볶이는 내년 7월부터 7% 올리겠다고 예고했다. 그동안 고유가·고환율로 인한 원재료비 상승 속에서도 정부의 가격 억제책에 숨죽이고 있던 기업들이 6·3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가격 인상에 나선 것이다.
서민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인 계란과 닭고기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특란 10구 소매가가 1년 전보다 38% 이상 오르며 5000원을 돌파했다. 마트나 시장에서 계란 30구 한 판은 1만원 이하짜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닭고기 가격도 전년 동기 대비 19.2% 뛰었다. 지난겨울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AI)로 산란계 1134만마리와 종계 44만마리가 살처분된 충격이 고스란히 가격에 반영되고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여파로 삼겹살값도 오르고, 고환율 때문에 수입 소고기 가격마저 오른다. 서민들은 집에서 밥을 해 먹기도, 외식을 하기도 겁나는 처지로 내몰린 셈이다. 계란 소비가 많은 식당 자영업자들도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정부가 신선란이나 닭고기용 병아리 등을 대거 수입해 시장에 공급하고 있지만 서민들은 아직 체감하지 못한다. 특히 여름철 본격적인 폭염과 폭우가 시작되면 농축산물 공급은 더 둔화할 수 있다.
AI로 인한 계란값 폭등은 최근 들어 연례행사처럼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긴급 수입 조치나 할당관세 적용 등 임시방편식 대응을 넘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가축 전염병 방역 체계를 고도화하고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 중간 유통 마진의 거품을 걷어내야 한다.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농축산물의 안정적인 국산 공급망을 확보하는 동시에 대안적인 수입처 다변화 전략도 정교하게 짤 필요가 있다. 물가 불안 분위기에 편승한 식품과 유통업계의 부당한 가격 인상이나 매점매석 행위가 없는지도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서민들의 먹고사는 고통을 덜어주는 것보다 시급한 정부의 민생 과제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