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정책은 모순덩어리다. 계통이나 체계 같은 것이 없다. 대통령의 생각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는 경제학자도 지식인도 없다. 당연히 정책 논쟁이 있을 수 없다. 논쟁이 없으니 정부 정책의 목표나 프로그램, 전략과 체계가 무엇인지 파악이 안 된다. 이 대통령 개인을 위한, 개인에 의한, 개인의 정부인가.
이 대통령은 자신의 옳음을 과시하는 데 필요하다면, 반일에서 친일로 자유롭게 오간다. 민족과 역사의식을 강조하다가 곧바로 투자와 돈 버는 이야기로 옮겨간다. 통합을 말하다 다시 적대와 갈등을 자극한다. 진보적인 것 같다가도 돌아서면 저만치 보수 쪽에 가 있다. 이 대통령은 이를 “실용”이라 강변하는데, 원칙 없는 ‘즉응’이다. ‘프래그머티즘’이라 불리는 진보적 실용주의와도 다르고, ‘현실적 최선’을 뜻하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실천론과도 다르다. 실용보다는 ‘자기 위주의 실리주의’라고 해야 맞다.
정책의 부재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부동산이다. 부동산 문제는 ‘인위적 중산층 형성’을 목표로 1970년대 이래 국가가 비정상적으로 유지, 관리, 확대해온 한국 경제의 독특한 요소다. 이로부터 한국식 계급 구조가 만들어졌다. 강남과 강북은 물론 수도권과 비수도권, 신도시와 구도시, 재개발 지역과 구도심을 분기시키는 선거 공간도 모두 부동산 문제에서 발원한다.
한국 사회는 곧 부동산 공화국이고 부동산 계급사회다. 이 말은 잘 준비된 정책 없이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부동산 문제라는 뜻이다. 그런데 왜 관련 부처들이 종합대책을 세우고 치밀하게 일의 순서를 정해 단계별로 협동하는 ‘정책 행동’은 없이, 대통령 개인이 SNS로 여론을 동원하는 식으로 일을 풀어갈까. 부동산 소유자를 공격하면 돈이 증시로 몰린다고 생각한 것일까. 주먹구구로 보인다. 부동산을 단순한 돈 문제로 몰아가면 잠시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다른 게 터진다.
증시도 마찬가지다. 주가는 오르는데 환율이 문제가 되고, 투자를 부추기는데 가계부채가 위험해진다. 물가는 오르는데 임금은 제자리이고 고용은 위축된다. 결국 고통은 주식 투자를 하지 않는 이들에게 전가된다. 다른 사안들도 비슷하다. 친일파 재산 몰수 같은 민족주의 이슈를 한참 강조하다가 돌아서면 의제는 사라지고 없다. 대립적 이해 다툼의 당사자가 아닌 행정안전부가 불매운동을 운운하다 말을 바꾼다. 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고 또 실현도 할 수 없는, 일종의 ‘정서적 분노’를 자극해 통치하는 것은 정부답지 않다. 감정적 말이 아니라 법과 제도, 규정과 절차의 언어로 일하지 않으면 정부 행동은 시민의 자유를 위협한다.
이 대통령의 정책은 대체 무엇일까. 누가 혜택을 보는지의 관점에서 보면 삼성 정권 같다. 네이버 정부나 재벌공화국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대통령은 재벌 총수들에게 각별하다. 그들을 대동한 해외 순방은 계속 늘고 있다.
이 대통령 덕분에 주식으로 돈 벌지 않았냐며 중산층들에 아첨하는 민주당 대표를 보면서, 차라리 사업가를 하지 왜 정치인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노동 윤리’를 이렇게 망가뜨려도 되나 하는 점이다. 일에 대한 헌신과 책임성이 없이는 어떤 사회나 조직도 행복할 수 없고 또 오래갈 수 없다. 사회를 이렇게 이끌면 누가 맡은 바 일에 열성을 다할 수 있을까. 돈을 따르는 인생이 아니라 주변을 돌보는 공동체적 삶을 누가 살려고 할까.
네이버 출신의 하정우 후보나 한성숙 후보자에 대한 여권의 생각도 궁금하다. 그들이 의원이 되고 국무총리를 한다? 그 역할에 맞는 ‘인사의 인과성’이 충분하다고 확신한 걸까. 한성숙을 총리 후보로 지명하며 “일만 하면 되는 사람”이라는 이 대통령의 말은 모욕적이다. 총리는 일만 하는 머슴이 아니다. 300명 의원들의 대정부 질의에 책임 있는 답을 해야 하는 가장 정치적인 자리다.
자본주의적 가치와 민주주의적 가치 사이의 관계로 보면, 민주당과 이재명 정권은 자본주의 정신이 지배하는 신보수 세력이다. 중도라는 이름으로 보수적인 민주당을 만들려는 ‘뉴 이재명’ 그룹이 이를 대표한다. 반공·친미 내용의 구보수와는 다른 신보수의 등장이다. 빨갱이 때려잡겠다는 전자의 구보수 못지않게 돈 벌게 해주겠다는 후자의 ‘뉴 이재명’ 신보수도 지나치다. 우리를 자신들과 같은 자본주의적 인간으로 보는 듯하다.
박상훈 정치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