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거시지표들이 당황스러울 만큼 엇갈리고 있다. 성장률과 수출은 높고 경상수지는 사상 최대 흑자다.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대외거래 소득도 크게 늘어, 올해 명목성장률이 두 자릿수에 이를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그러나 원화는 약세이고 고용은 감소했으며, 물가는 다시 3%대로 올랐다. 시장금리도 상승세다. 수출 호황과 내수 부진, 대외 흑자와 환율 불안, 성장과 고용 감소가 동시에 나타나는 낯선 국면이다.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1.8%, 전년 동기 대비 3.8% 증가했고,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을 2.6% 수준으로 전망한다. 더 주목할 것은 생산보다 소득이 훨씬 빠르게 늘었다는 점이다. 실질 GDP가 3.8% 증가하는 동안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13.2% 늘었다. 반도체 수출가격이 수입가격보다 크게 오르며 교역 조건이 개선된 덕분이다.
5월 통관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53.2% 늘었고, 반도체와 컴퓨터 수출이 이를 이끌었다. 그 결과 1분기 경상수지 흑자는 744억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연간 흑자도 25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카드 사용액 증가는 2.3%에 그쳐 수출 호황이 내수와 가계로 충분히 번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더욱이 이 정도 흑자라면 원화 강세가 일반적이지만, 원·달러 환율은 1500원대 중반까지 올랐다.
물론 지금을 외환위기 때와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외환보유액과 대외순자산, 금융기관의 건전성은 당시와 다르다. 그러나 경상수지 흑자만으로 환율을 설명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는 점은 분명하다. 미국 고용지표 호조에 따른 달러 강세, 금리 인하 기대 축소, 외국인의 주식 차익실현과 리밸런싱, 한·미 금리 역전에 따른 환헤지 수요가 원화 약세 압력을 키우고 있다. 무역에서 벌어들이는 달러와 금융시장에서 움직이는 달러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환율 약세는 물가와 금융시장 불안을 함께 자극할 수 있다.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1%, 근원물가는 2.5%였다. 종전의 기대로 인해 유가 측면의 비용 압력은 다소 낮아질 수 있지만, 반도체 호황과 자산시장 상승, 재정지출 확대가 총수요를 자극할 가능성도 있다. 국고채 금리도 물가와 통화정책 기대 변화에 따라 상승하고 있다.
고용은 더욱 우려스럽다. 이 정도 성장률이라면 통상 상당한 고용 순증을 기대할 수 있지만, 5월 취업자는 오히려 4만명 감소했다. 제조업·건설업·농림어업의 감소폭이 확대됐다. 인구의 구조적 변화로만 설명하기에는 감소폭이 크다. 첨단산업 중심의 성장은 생산성을 높이지만 고용유발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가계동향조사는 성장의 과실이 고르게 분배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1분기 전체 가구의 실질소득 증가는 0.4%에 그쳤다.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소득은 2.7% 늘어난 반면, 상위 20%인 5분위 가구의 소득은 4.2% 증가했다. 1분위는 소득보다 소비지출이 많았지만, 5분위는 높은 소득과 자산가격 상승의 혜택을 함께 누릴 수 있다.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기준 5분위 배율도 6.59배로 상승했다. 소득 양극화가 자산 양극화와 결합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반도체 수출과 기업 이익이 늘어난다고 해서 일자리와 가계소득이 자동으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가계대출이 5월 9조4000억원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주택 거래 증가와 주가 상승에 따른 레버리지 투자 수요가 자금을 부동산과 금융시장으로 몰아갈 수 있다. 성장과 자산가격 상승이 생산적 투자보다 빚을 통한 자산 매입으로 이어진다면 경제의 취약성은 더 커진다.
환율·물가·가계부채·자산가격·고용은 서로 맞물려 있지만, 어느 하나의 정책수단으로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금리만으로 물가를 잡으려 하면 고용과 가계부채 부담이 커질 수 있고, 환율 안정에만 무게를 두면 내수와 금융시장에 다른 부담이 생길 수 있다. 재정·통화·금융·산업정책이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면서도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정교하게 조율해야 한다. 반도체 수출 호황과 교역 조건 개선의 혜택 역시 기업 이익과 자산가격 상승에만 머물지 않고, 양질의 일자리와 가계의 실질소득 증가로 이어져야 한다.
대혼돈의 거시경제지표는 단순한 통계의 엇갈림이 아니다. 한국 경제가 과거와 다른 구조적 환경에 들어섰다는 신호다. 지금 우리 경제에 필요한 것은 성장률과 물가, 환율과 금융 안정뿐 아니라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까지 함께 살피고 조율할 수 있는 거시정책 리더십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