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공원’이 보여준 정치의 빈자리
정치가 외면한 청년, 다시 정치를 밀어내다
‘극우 준동에 반대하는 건국대 구성원들’ 소속 학생들이 지난 9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에서 극우 발의 시국선언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2026.6.9 권도현 기자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변곡점이 생길 때마다 사회가 앞다퉈 청년을 조명하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이쪽도 저쪽도 청년을 찾아요. ‘20대 개새끼론’부터 ‘이대남’ ‘이대녀’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는 유구합니다.
이 역사는 청년을 호명하기만 할 뿐, 청년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남겨두는 식으로 반복돼요.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이후 2030 세대를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점선면이 자세히 분석해 봤어요.
청년의 얼굴은 다양하다
당연하게도, 청년의 얼굴은 다양합니다. 그런데 기성세대는 청년의 여러 얼굴을 뭉뚱그리는 경향이 있어요.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응하는 청년의 모습도 여러가지입니다. 먼저 대학가로 가보겠습니다. 주간경향이 투표용지 부족과 관련해 대학가에서 나온 대자보 391건을 분석했어요. 부정선거(1건)는커녕 재선거·재투표(13건) 요구도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부정선거 음모론에는 단호하게 선을 긋는 모습이 보였어요.
대신 투표권이라는 당연한 권리를 훼손한 주체(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향한 분노가 주를 이뤘습니다. 제도적·절차적·실질적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에 태어난 20대에게 민주시민의 권리는 생득적인 것이에요. 그걸 박탈당했다는 것이 매우 불쾌한 경험이었던 겁니다. “약속하고 쓴 문장들이 아닌데도 각자의 언어로 비슷한 권리의 문제를 말하고 있었다”는 대자보 모음 개발자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대학가 성명문 아카이브 사이트 ‘한 표의 기록’ 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 관련 대자보 워드클라우드. ‘한 표의 기록’ 갈무리
그다음은 현장으로 가볼게요.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일대 집회에서 만난 청년들도 “의무는 지게 하면서 권리는 지켜주지 않았다” “당연했던 권리를 못 누리게 됐다”는 불만을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탈정치’ 구호를 앞세우며 순수성을 강조했어요.
다만 올림픽공원 시위는 장기화되면서 조직과 자금, 현장 집회 노하우를 축적한 ‘부정선거론’ 진영에 조금씩 잠식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현장을 찾았다가 부정선거론이 일리 있다고 생각하게 된 참가자들이 있어요. 일부 청년은 부정선거론 침투를 거부하며 ‘참정권’ 의제 중심의 활동을 모색하기도 했습니다.
정치가 외면한 청년, 다시 정치를 밀어내다
이렇듯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응하는 2030 세대의 얼굴은 입체적이고 다양합니다. 다층적이고 풍부한 맥락을 내포하는 현상을 특정 이해관계나 선호에 맞춰 단편적으로 보려 할 때 ‘납작하다’고 표현하죠. 6·3 지방선거 후 청년의 얼굴도 ‘탈정치되어 순수하다’거나 ‘부정선거론에 이끌려 극우화된다’는 식으로 납작하게 해석되고 있습니다.
납작하게 보기 대신, 이 다양한 얼굴들이 하나같이 강조한 ‘탈정치’를 바라봐야 할 듯합니다. 대학가 대자보에서도, 올림픽공원에서도 ‘정치’라는 말을 부정적인 맥락에서 사용하고 정치를 배제하고자 한 것만큼은 같았어요.
학생회들의 대응이 12·3 불법계엄 때보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서 더 신속하고 적극적이었다는 게 흥미로운 일례입니다. 올림픽공원 집회 초기에는 “(부정선거 말고) 참정권 피해 구호만 외쳐달라” “(성조기 말고) 태극기만 흔들어달라”는 외침이 있었고요. 참정권이 문제라면 장애인·청소년·이주민 참정권 이야기도 가능하지만 절대 거기까지 확장되지는 않습니다. 정치는 다 빠지고 ‘내 참정권’ 문제만 착 달라붙은 겁니다.
정치가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청년의 공간에서 표백된 건 그동안 정치가 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풀어주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태어나서부터 학벌·스펙·취업 무한경쟁에 허덕였고, 근로소득만으로 내집마련이나 장밋빛 미래는 멀어 보이고, 불평등·양극화는 심해지기만 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청년 민심을 의식한 듯 어제(23일) “역대급 성과급이나 역대급 코스피 지수도 ‘나에게는 딴 세상 이야기’라는 청년들의 소외감을 정부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청년 세대는 현시대의 가장 큰 소외자들”이라고 했어요.
그런 한편 현재 정치권 주류인 민주진보 진영에서는 학벌과 부를 세습하려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 기성 세대 인사들의 모습이 노출됐죠. 젊은 시절 정의를 외치던 옛 모습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위선은 깊은 실망과 분노를 부르게 마련입니다.
극우 성향의 청년들에게 ‘합법적 몽둥이’가 필요하다고 누군가는 말했습니다. 정치가 증발한 청년의 공간에 도사린 것은 어쨌든 부정선거론 세력이고 극우 진영이었어요. 청년 100명 중 1명만 극우 진영이 포섭해도, 그는 앞으로 그 땅에 서서 살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장은 힘이 세거든요. 몽둥이로 되돌려놓고 싶겠지만 그게 될까요? 아마 총칼로도 어려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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