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급생을 괴롭혀 죽음에 이르게 한 학생이 특전사 출신 교권보호국 감독관에게 호되게 맞는 장면을 보면서 ‘맞아도 싸지’라고 생각했다. “괴물은 괴물로 잡겠다”며 초법적 권력과 물리력을 동원해 가해자를 응징하는 모습에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이런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죄책감을 동반하는 즐거움)도 잠시, 회를 거듭할수록 드라마를 보기가 괴롭고 불편했다. 학교는 왜 이 지경이 되었나 하는 무거운 의문이 몰려왔다.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에피소드들은 공교육 붕괴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참교육>이란 제목만큼이나 모순적 상황들 속에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도 혼란스럽다. 드라마를 둘러싼 여러 논란이 있지만, 결국은 무법천지가 된 학교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야 하느냐는 숙제를 던진 것 같았다.
오늘날 학교는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공간이 됐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지도할 권위를 잃었다고 호소한다. 학생들은 경쟁과 불안에 시달린다. 학부모들은 학교를 믿지 못한다. 학교폭력과 사이버 괴롭힘, 청소년 도박과 마약, 악성 민원과 소송은 늘어나는데 정작 문제를 해결할 시스템은 보이지 않는다. 무너진 것은 교권만이 아니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 사이의 신뢰 자체가 붕괴됐다.
누구도 만족 못하는 공간, 학교
입시 위한 서열화·능력주의 뿌리
위기 방치한 정부·교육당국 책임
학교를 구하는 건 영웅이 아니다
교육 문제는 교육정책만으로 풀기 어려울 만큼 여러 요인이 뒤엉켜 있지만 그 중심에는 입시 위주의 교육정책과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사회구조가 자리해 있다. 수능 최저기준, 내신 등급, 학교생활기록부의 세부 능력과 특기사항까지 챙겨야 하는 입시 제도하에서 아이들은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 과도한 서열화와 성적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 지난해 고1부터 내신 9등급제가 5등급제로 바뀌었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1등급을 받지 못하면 인서울은 사실상 끝”이라며 성적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오히려 내신 부담으로 자퇴와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이 늘고 있고, 사교육비 지출이 증가했다는 통계가 나오는 상황이니 입시 제도 개편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승자독식 문화가 지배하는 학교에서 인권 존중, 책임과 권한, 민주주의와 자유 등 성숙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동체적 규범이나 교양 수업이 설 자리는 없다.
문제는 정부와 교육당국이 이 위기를 방치해왔다는 점이다. 대중이 법과 제도 바깥의 초법적 폭력에 환호하는 현상은, 결국 공적 책임과 국가 시스템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절망감과 무력감의 반증이다. 우리의 교육정책은 구조적·본질적 문제에는 손대지 않고 AI 인재 양성, 서울대 10개 만들기 같은 단편적·기능적인 내용 위주로 채워져 있다. 과거 교육 현장에서 횡행하던 과도한 체벌과 권위주의적 훈육 방식을 없앤 뒤, 그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지 못했다. 학생 인권을 확대하는 동시에 교사의 교육권을 보호하고, 학교폭력에 신속하게 대응하며, 학부모와 학교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실패했다. 1989년 창립 당시 민주주의의 완성, 인권교육 등을 강조한 ‘참교육실천강령’을 내놓았던 전교조는 여느 직능단체처럼 자신들을 지키는 구호에 익숙해져 있다. ‘진보진영 단일후보’로 당선된 안민석 경기도교육감 당선인은 한발 더 나아가 “특전사·해병대·공수대 출신 교사 20~30명을 확보해 학교가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경기도에서 ‘참교육 시즌2’를 구현하겠다고 한다. 포퓰리즘에 기대어 드라마 속 판타지를 정책이라고 내놓는 교육감 당선인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목도하면서, 역대 두 번째로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지방선거에서 유독 100만표 넘게 무효표가 발생한 교육감 선거의 쓸모를 새삼 곱씹어보게 된다.
망가진 교실을 구할 수 있는 건 영웅이 아니라, 법과 규정을 준수하며 성실히 제도를 바꾸고 책임을 다하려는 모든 교육 주체들이다. 교권 강화와 학생 인권 보장은 양립할 수 있는 가치다. 학생들이 안전한 교실에서 생활하고, 교사들이 보호받으며, 학부모가 학교를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교육당국은 진지하게 논의해주길 바란다.
이주영 기획콘텐츠총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