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지루한 하굣길에 하는 놀이가 있었다. 크기가 적당한 작은 돌멩이를 하나 고르고 집까지 오는 길에 공을 몰 듯 툭툭 발로 차며 걸었다. 머릿속으로 축구공을 멋지게 몰고 가는 축구선수를 상상하면서. 집이 가까운 친구와 함께할 때는 둘이 번갈아 작은 돌멩이를 주거니 받거니 패스하며 걷기도 했다. 돌멩이가 축구공이었던 셈이다.
비석치기 할 때 어깨 위에 올리고 조심조심 걸어가 상대의 돌을 몸 기울여 쓰러뜨리려면 손바닥만 한 넓적한 돌이 적당했다. 땅따먹기로 종목을 바꾸면 다른 돌을 골라야 했다. 손가락으로 튕겨 땅 위에서 미끄러지듯 움직이게 하려면 손톱만 한 납작한 돌이 제격이었다.
동네 저수지 쑥골방죽에서 물수제비를 하려면 돌을 잘 골라야 했다. 수면에 거의 평행하게 낮은 각도로 힘껏 던지면서 동시에 적당한 속도로 회전도 시켜야 하는 물수제비 놀이에서 이기려면, 던질 때 실수도 하지 말아야 했지만 돌 고르기가 관건이었다. 열 번 넘게 튕기며 미끄러지듯 날아가는 돌을 보면 뿌듯했지만 딱 한 번뿐 다시 쓸 수 없어 아쉬웠다. 어린 시절 여러 놀이에는 각양각색의 돌이 필요했다. 비석치기를 하는 돌로 땅따먹기를 할 수는 없었다. 한 놀이에 적당한 돌은 놀이가 바뀌면 쓸모가 없었다.
선사시대는 선조들이 사용한 도구를 기준으로 구분한다. 우리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그리고 철기 시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구석기시대 초기의 주먹도끼는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강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부분이 부서진 평범한 돌멩이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주먹도끼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돌멩이를 적절히 다듬어 제작한 분명한 도구다. 돌멩이 일부를 부수고 다듬어 주먹도끼를 만들어 사용하기 전 우리 선조는 어떤 도구를 사용했을까? 어려서 땅따먹기와 비석치기를 위해 직접 돌을 다듬어 쓰지는 않았다. 놀이의 목적에 맞는 적절한 돌을 다르게 골라 썼다. 마찬가지다. 석기를 제작하기 전의 우리 선조도 주어진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 있을 법한 천연의 돌멩이를 잘 골라서 아무런 제작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접 사용했으리라.
돌멩이를 석기로 만드는 것은 돌멩이 자체가 아니라 쓰임새다. 똑같은 천연의 돌멩이라도 주어진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면 유용한 도구로 탈바꿈한다. 손으로 잡아 내려치기에 적당한 돌을 골라서 다른 포식자가 남기고 간 사체의 뼈를 부수어 골수를 먹었고, 날이 선 얇은 돌 편을 운 좋게 발견하면 동물 뼈에 붙어 있던 얼마 안 되는 고기를 발라냈다. 지천으로 널려 있던 다양한 크기와 모습을 가진 여러 재질의 돌은 우리 선조가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유용한 첫 번째 도구였으리라.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도시에는 시내에도 포장이 되지 않은 골목길이 제법 많았다. 평소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내린 비로 인해 진창으로 변하는 길도 있었다. 다른 도시에서 일하고 토요일 밤 집에 오시는 아버지를 마중하러 버스 정류장에 가고는 했다. 아버지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던 비 그친 어느 밤을 기억한다. 장화를 신고 나왔다면 첨벙첨벙 문제없이 오히려 재밌게 걸었겠지만 운동화를 신고 나와 조심조심 걸었다. 빗물이 고인 길이 달빛에 반짝였다. 반짝이지 않는 어두운 곳을 딛고 걸으라는 아버지 말씀이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발을 디딜 넓적한 디딤돌이 보이면 다행이었지만 훌쩍 건너뛰다 발이 진창에 빠지기도 했다. 다음날 해가 나서 땅이 마르면 진창을 건널 때 유용했던 디딤돌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간밤의 디딤돌은 다음날 걸림돌이 되기도 해서 조심하지 않고 휘적휘적 걷다가 발가락을 찧을 때도 있었다. 같은 돌인데 진창일 때 디딤돌이 마른 땅 위에서는 걸림돌로 탈바꿈한다. 같은 돌인데 상황에 따라, 그리고 어떻게 쓰이는지에 따라 디딤돌이 되기도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길 위에 놓인 돌이라면 나는 걸림돌일까, 아니면 디딤돌일까. 누군가의 디딤돌이 다른 이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내년이면 어느덧 환갑이다. 반짝이는 곳이 아니라 어두운 곳을 보라고 하신 당시의 아버지가 지금 나보다 훨씬 더 젊다. 내 젊은 시절과 견주어 닮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요즘 젊은 세대를 보며 생각이 많다. 디딤돌이 되기 어렵다면 걸림돌이 되는 것만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길 위에 머물다 누군가의 걸림돌이 되느니, 길가 풀숲에 숨는 것이 나은 게 아닐까. 혹시 모르지. 어느 아이 눈에 띄어 물수제비 돌이 될 수 있다면. 수면 위 멋진 몇번의 활강을 마치고 가만히 물속으로 사라질 수만 있다면.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