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소장 현진오)의 시코쿠 꽃산행 말석에 끼었다. 마키노 식물원에서 한국에 매우 드물게 자생하는 만년콩의 활짝 개화도 관찰했다. 일본의 100대 명산인 쓰루기산( 1955m)을 다녀오는 길. 우리나라에서는 멸종위기종인 기생꽃이 고원지대에 소박하게 피어 있다. 섬이라서 발버둥 치듯 산은 더욱 높이 솟았나.
쓰루기산은 조릿대가 산허리부터 정상까지를 점령해 다른 식물의 틈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보기엔 호쾌하겠으나, 저 아래 햇빛 한 줌 구하지 못해 질식하는 야생화들의 처지가 눈에 밟혔다. 짧게 깎은 머리카락처럼 빳빳한 산의 능선을 바위가 누르는 게 한눈에 보인다. 호치키스가 서류를 박듯, 띄엄띄엄 포진한 바위들. 저 돌이 아니었다면 산은 경사를 이기지 못하고 비탈을 주체하지 못해 아래로 주저앉지 않았을까. 바위들이 산을 지그시 눌러 저 키를 유지하고 그 높이에서 세상의 깊이가 유래하는 것 같다.
그런 돌들의 당돌한 자세를 눈에 담고 고된 산행에서 내려와 숙소로 간다. 고향이든 절이든 저무는 저녁에 도착하는 게 좋다. ‘저녁’이란 우리말에는 기역자가 작대기처럼 받치고 있어 이 시간대를 잠깐이나마 근사한 무대로 만들어준다. 이때를 기다리기라도 하였다는 듯, 인간의 마을은 제 마음을 후련히 풀어놓는다.
이날도 낯선 동네를 지날 땐 저녁이었다. 내 고향으로 갈 때와 비슷한 풍경. 좌우의 논마다 꿈꾸는 벼들, 그곳마다 못물이 찰랑찰랑, 그 속마다 하늘이 잘람잘람. 그리고 고즈넉한 광경 속에 반짝이는 교통표지판의 실루엣들. 자전거길엔 아빠와 꼬마, 통학로엔 오빠와 여동생, 횡단보도엔 어머니와 아이. 한결같이 손을 꼭 붙잡고 있다.
일본의 유명 출판사인 이와나미서점의 로고는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의 실루엣이다. 세상에 지혜의 씨를 뿌린다는 창업정신을 구현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기호는 많다. 경남의 통영은 바다에 떠 있는 섬들의 실루엣으로 ‘통영’이라는 글자를 기막히게 조립하고 있다. 산에서는 산의 일, 섬에서는 섬의 일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저녁. 내가 겪은/ 겪을 많은 이/ 일들이 등불처럼 지나가고 멀리 미국에 있는 곧 두 돌이 되는 손녀 생각이 몹시도 진하게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