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주변에 글 못 쓰는 병에 걸린 것 같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녔다. 실제 개인적으로 계획했던 글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에게 약속했던 글마저 마감을 어기는 일들이 생겨났다. 한 달이면 충분했을 글 한 편을 쓰는 데 반년이 걸리고 어떤 것은 일 년 넘게 붙들고 있기도 했다. 글쓰기에 매진하겠다며 이런저런 활동들을 중단했는데, 활동을 접는 데만 성공했을 뿐 글쓰기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물을 붓는데도 말라죽어가는 식물 같았다.
그러다 두어 달 전부터 작은 싹 하나가 움트는 걸 느낀다. 나라는 식물이 시간보다 절실히 원했던 것이 따로 있었음을 이제야 알겠다. 두 명의 청년 연구자 덕분이다.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은 지난 봄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내게 똑같은 이야기를 하며 한 번 만나고 싶다고 했다. 한 사람은 연구활동가로 살아갈 결심을 했다고 했고, 다른 한 사람은 독립연구자의 길을 걷고 싶다고 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20여년 전 똑같은 꿈을 꾸던 내 안의 청년 하나가 깜짝 놀라 깨어났다. 내 몸에 연초록의 기운이 돌았다.
물을 줘도 말라죽는 식물처럼
꿈을 잃어버리면 글도 시들어
청년 연구자들의 꿈 앞에서
잊고 있던 내 꿈이 깨어났다
예전에는 나만이 아니었다. 똑같은 꿈을 꾸며 함께 떠들어대던 동료들이 주변에 참 많았다. 당시 우리에게 대학의 지식인은 아무리 좋게 보아주어도 연민의 대상이었다. 이미 대학교수인 사람들은 미안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곁에 앉았고, 이제 막 대학교수가 된 사람들은 ‘알바 삼아’ 열심히 돈을 벌어오겠다며 포부인지 변명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했었다. 대학에서 시들어가던 꽃들도 이곳에서는 정말 잘 자랐다. 여기가 더 즐거웠고 여기가 더 보람찼다.
그런데 한 시절이 가고 공동체가 깨지자 많은 이들이 꿈부터 버렸다. 어떤 오류나 환각, 부끄러움이라도 본 것처럼. 누구랄 것도 없이 내가 그랬다. 나는 언제부턴가 꿈을 꾸지 않은 채로 글을 쓰고 있었다. 적은 있었을지언정 꿈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알게 되었다. 꿈을 잃으면 글이 시든다는 걸. 알게 모르게 나도 시들어왔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작가 루쉰이 오랜 침묵을 떨치고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을 때도 어느 청년의 꿈이 있었다. 황제를 무너뜨린 혁명이 복벽으로 귀결되었을 때 그는 붓을 놓았다. ‘광명’은 사라지고 ‘적막’만이 달라붙었다. 오랜 ‘적막’ 속에서 그는 옛 글을 읽고 비문을 베껴 쓰는 일만을 했다. 무엇이 다시 붓을 들게 했을까. 소설집 <외침>의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젊은 시절처럼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는 청년들에게 내 안의 고통스러운 적막이라 여긴 것을 더 이상 전염시키고 싶지 않”다고, 설령 자신에게는 입을 열어야 할 절박한 사정이 없다고 해도 젊은 용사들에게는 위안과 응원의 말을 하고 싶었다고.
첫 소설 <광인일기>를 내던 해 그는 일본 작가 무샤노코지 사네아쓰의 작품 <어느 청년의 꿈>도 번역 출간했다. 그는 역자 서문에 그때의 심정을 적었다. 어느 날 친구인 쑨푸위엔이 글을 좀 써보라고 했다. 글을 쓸 생각은 없고 <어느 청년의 꿈>의 번역이라면 해볼 수도 있겠지만 누가 이런 책을 보겠냐며 그는 친구를 돌려보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책 표지를 바라보며 낮의 일을 떠올리던 중 갑자기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몰려왔다고 했다. “사람이 이래서는 안 된다.”
그는 저자인 무샤노코지가 <신촌잡감>이라는 책에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불을 가슴에 가진 자여. 불을 숨겨진 곳에 두지 말고 우리들이 볼 수 있는 곳에 두어라. 그리고 신호해주어라. 여기에도 당신들의 형제가 있다고. 그들이 극심한 비바람 속에서 횃불을 올리고 있는데도 나는 검은 장막으로 그것을 차단하고 잠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꼬리를 치려고 하는 것인가?”
그동안 내가 했어야 할 일이다. 어두운 밤길을 걷는 젊은 동료가 조금은 덜 외롭고 조금은 힘을 더 낼 수 있도록, 당신만이 아니라고, 나도 여기에 있다고 가슴의 불을 꺼내놓는 일 말이다. 언제부턴가 나도 ‘검은 장막’을 두르고 ‘잠들어 있는 사람들’ 옆에서 ‘꼬리를 치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장막 안으로 들어가는 선후배에게 역시 ‘될 사람은 된다’고 추켜올렸고, 지루한 글들에 거짓 감탄했으며, 직업을 신분으로 아는 사람들의 득의양양한 얼굴 앞에서 웃음을 짓지 않도록 조심했다. 내가 거짓말 때문에 지옥에서 어떤 형벌을 받는다면 그 상당 부분은 대학의 학자들에게 보낸 거짓 축하와 칭송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비바람 속에서 횃불을 들고 걷고 있는 훌륭한 연구자가 많다. 이제부터라도 정신 차리고 이들의 글을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알려야겠다. 내게도 꿈이 있었다. 아니, 내게는 꿈이 있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