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본능을 가장 자극하는 스포츠로 꼽힌다. 영역 동물인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는 데다 15분간의 하프타임을 제외하고는 전후반 90분간 경기가 계속된다. 영국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Desmond Morris)는 “축구는 원시시대 사냥에서 진화한 의례화된 전투”라고 정의했다.
거기다 축구는 손으로 하는 농구나 럭비와 달리 골이 잘 터지지 않는다. 90분 내내 긴장과 흥분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이런 감정 상태는 코르티솔, 아드레날린 같은 스트레스 반응 호르몬과 기대와 보상 호르몬인 도파민을 분비시킨다. 승리하면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도파민,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직접 뛰는 선수뿐 아니라 지켜보는 관중도 그리고 중계방송을 보고 듣는 시청자도 같은 심리 상태에 빠진다.
축구팬들은 긴장감을 누그러뜨리거나 증폭하기 위해 고칼로리 음식을 찾는다. 우리나라 축구팬이 선택한 음식은 치킨과 맥주다. 치맥이 한국에서 국민 관전 음식으로 정착한 것은 2002 한·일 월드컵 때다. 선택된 이유는 기름진 고칼로리 음식인데 가성비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손으로 간편하게 먹을 수 있고 식어도 맛이 있다. 또 남녀노소 두루 좋아하는 것도 장점이다. 그전까지 우리나라 축구장 음식은 건어물과 소주·맥주였다.
다른 나라도 비슷하다. 미국은 미식축구·일반 축구를 관전할 때 매운 닭날개 튀김인 버펄로윙을 먹으며 맥주를 마신다. 축구 종주국 영국은 고기를 파이 시트로 감싸 구운 미트파이를 먹는다. 독일과 프랑스는 소시지를 넣은 빵과 맥주를, 이탈리아는 사각피자와 맥주를 먹는다. 인류 문명을 상징하는 젓가락이나 포크가 아니라 손으로 들고 뜯어먹는 고칼로리 음식이라는 게 공통점이다.
이들 음식은 단순히 칼로리만을 공급하지 않는다. 기름기, 높은 칼로리, 짠맛은 즉각적인 보상 호르몬인 도파민을 분비시킨다. 알코올까지 들어오면 뇌에서 자제력을 전담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진다. 경기 내내 고성을 지르고 탄식을 뱉으며 전혀 모르는 사람과 손을 잡고 펄쩍펄쩍 뛰는 현상은 호르몬 샤워와 알코올 덕이다. ‘의도된 퇴행’은 지역 축제나 전통 의례에서 맛볼 수 있는 해방감을 준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과열된 열기로 팬들끼리 충돌하거나 폭동 같은 불상사가 생긴다. 영국 훌리건이 대표적이다.
모든 스포츠 관람 음식이 의도된 퇴행을 염두에 두지는 않는다. 영국 윔블던 테니스 대회의 관전 음식은 생크림을 얹은 딸기와 샴페인이다. 귀족 사교용 행사에서 출발한 대회답게 ‘구별짓기’를 위한 음식이다. 2025년 US오픈 테니스 대회에서는 치킨너깃 같은 패스트푸드에 진짜 캐비아를 얹은 기괴한 음식이 등장했다. SNS를 겨냥한 음식이었다.
변화 조짐은 한국 야구장에서도 볼 수 있다. 서울 잠실과 고척 야구장 매점에서는 치킨과 크림소스를 얹은 새우튀김(일명 크림새우)을 판매한다. 이 음식은 손이 아니라 꼬치로 먹는다. 관전 음식의 불문율인 ‘손’이 ‘꼬치’로 바뀌었다. 음식을 담아주는 야구헬멧 모양 다회용기도 앙증맞다. SNS에 올리기 좋은 아이템들이다. 승부에 몰입해 의도적 퇴행을 하며 해방감을 만끽했던 스포츠 관전 문화가 SNS에 올리기 좋은 관람 문화로 바뀌는 것은 아닐까. 치맥이 대세인 축구장에도 변화의 물결이 몰려올지 궁금하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