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야 모두 권력싸움 한가운데에 있다. 야는 생략하겠다. 여만 보자. 친청, 친명 갈등이 요란하다. 그런데 각자가 무엇을 추구하고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답은 없다. 다시 말해 왜 싸우는지가 뚜렷하지 않다. 물론 당사자들은 비장하다. 그러나 밖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기시감과 착잡함이 든다. 친청이니 친명이니 하는 명칭 자체가 내용의 빈곤을 보여준다. 과거에도 마치 일본 전국시대 가문 간의 분쟁처럼, 친윤이니 친박이니 친문이니 친노이니 하는 이름들이 우리의 정치사에 등장해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들 중 뚜렷한 정치적 비전으로 국민에게 호소한 기억은 많지 않다. 정책과 전망보다는 특정 정치인에 대한 막연한 기대, 호불호, 또는 개인의 정치적 타산이 줄 서고 분열하는 주요한 이유였다.
사실 당권을 놓고 경쟁하는 김민석 총리도 정청래 전 대표도 딱히 “나 아니면 안 돼”라고 말할 이유가 무엇인지 감이 잘 안 온다. 둘 다 대통령의 인기가 높고 야당은 지리멸렬한 시기 행정부 살림을 맡고 집권당을 이끄는 행운을 누렸다. 그 또한 쉽지는 않았겠지만 유난히 어려웠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 1년 사이에 “역시 김 총리야!” 혹은 “정 대표구나, 역시!”라고 느낀 순간이 몇번이나 있었는지 솔직히 되묻게 된다.
김민석 총리도, 정청래 전 대표도
이렇다 할 정책·전망 보이지 않아
불행한 사람들의 한숨 듣지 못하면
누가 권력 쥐든 버림 받게 될 것
두 사람과 그들을 따르는 그룹이 벌이는 갈등은 경제와 외교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기에 더욱 기괴하다. 선관위 부실과 여기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연일 소리를 높이고 국제 정치적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의 해소부터 지역 발전까지 이제 첫 삽을 뜬 사업도 수두룩하다. 온 나라가 신경 써야 할 문제투성이다.
나는 여기서 잠깐 시간을 내어 근처 대형병원의 응급실에 가보라고 말하고 싶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약한 존재이고 금전도 권력도 다 의미 없으니 욕심을 거두고 화합하라는 그런 뻔한 도덕 설교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지금 권력을 위해 싸우는 정치인들에게 이곳에 가보라고 하는 것은 그곳이 정치가 왜 시작되었는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우리 주변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응급실에서 우리는 지금의 행복이 얼마나 부스러지기 쉬운 것인가를 본다. 응급실에 발을 들이는 사람들은 갑자기 우리 삶에 얼굴을 들이미는 불행을 마주한 사람들이다. 운이 좋다면 다시 걸어서 나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환자, 온 가족의 행복이 그 순간부터 증발해 버린다. 쏟아질 치료비가 주는 부담부터 간병까지 삶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사실 응급실만이 아니다. 인간 행복이 얼마나 연약한지 불행이 얼마나 우리 가까이 있는지를 실감할 곳은 주변에 많다.
인간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나아가 국가라는 것을 만들거나 혹은 받아들인 이유 안에는 이런 불행을 함께 넘어서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 혼자서 이길 수 없다면 남다른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모아주어서라도 행복의 실낱같은 기회를 잡고 싶어 했다. 사람들이 세금을 내고 목숨까지 걸고 전장에 나서는 이유는 국가가 자신을 불행에서 건져줄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되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만큼 삶의 기반이 무너지려는 순간 국가가, 정치인들이 손을 잡아주지 않을 때 사람들은 실망과 분노에 휩싸인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골칫거리인 극우 포퓰리스트들도 따지고 보면 그런 실망과 분노를 자양분으로 성장한다. 당신의 실업은 당신의 어려움에 아랑곳하지 않고 심지어 외국인에게 더 호의적인 위선투성이 엘리트들의 탓이라는 식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나? 문제는 민생이다!’ 식의 값싼 실용주의를 내세울 생각은 없다. 민생이 민주주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다만 어떠한 정치 투쟁도 사람들이 살아가며 겪는 절망감을 덜어주고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뻔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을 따름이다. 지금 한국에는 권력을 위한 투쟁에 여당의 지도자들이 몰두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불행과 절망이 존재한다. 그들의 한숨을 듣지 못할 때 사람들은 누가 권력을 쥐든 그들을 버릴 것이다.
지금 핏대를 올리는 사람들은 이러한 기본이 자신들의 머릿속에서 희미해져 버린 것은 아닌지 한번 진지하게 돌이켜보기 바란다. 남들도 다 하는 AI 전환, 지방시대 이야기 말고 사람들의 고통을 진심으로 느끼고 극복할 방법을 찾아 진정으로 번민해 본 시간이 얼마나 있었는지를 겸허하게 되짚어보기 바란다.
윤비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