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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딜레마

입력 2026.06.29 18:09

수정 2026.06.29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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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전역이 기록적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지난 2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에서 사람들이 지하철역 통풍구 위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연합뉴스

유럽 전역이 기록적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지난 2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에서 사람들이 지하철역 통풍구 위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연합뉴스

어릴 적 외가의 한옥 대청마루는 널찍했다. 앞뒤가 터진 그곳에서 목침을 베고 있노라면 살랑이는 바람의 기운에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한여름 땡볕도 그 ‘바람 한 줌’이면 견딜 만했다. 하지만 콘크리트와 유리로 둘러쳐진 ‘닭장’ 같은 도시에서 형편은 달라진다. 미국인 윌리스 캐리어가 1902년 인쇄소 습기를 해결하려 ‘에어컨’을 고안했을 때, 자연의 방어막이 사라진 곳에서 대안이 되었다. 인간이 처음으로 기온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오래도록 그 물건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유럽 가정의 에어컨 보급률은 20%에 불과하다. 미국 CNN은 최근 “연일 40도가 넘는 기온에도 여전히 선풍기와 얼음팩, 찬물 샤워에 의존해 더위를 견디는 시민들이 부지기수”라고 전했다. 100년 넘은 유서 깊은 건물의 보존과 비싼 전기료, “냉방은 사치”라는 환경윤리가 만들어낸 풍경이었다.

올여름 유럽 전역이 폭염으로 대규모 정전, 휴교 등 피해가 속출하면서 사정이 복잡해졌다. 급기야 내년 대선을 앞둔 프랑스에선 에어컨 문제가 ‘좌우’ 정치 논쟁으로 번졌다. 마린 르펜 등 극우 국민연합 인사들이 “에어컨 반대는 좌파가 강요하는 이념적 금기”라며 에어컨 설치를 공약하면서다. 반면 좌파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장뤼크 멜랑송 대표는 “도리어 피해를 키운다”며 에어컨에 반대했다. 더워서 에어컨을 켜면 그 때문에 더 뜨거워진다. 에어컨을 거부해선 당장의 고통을 줄일 길이 없고, 에어컨을 선택해도 미래의 더 큰 위험을 감내해야 할 딜레마다.

하지만 논쟁의 무게추는 기울어진 듯 보인다. 당장 생명을 위협받는 것과 아직 현실화하지 않은 재앙의 무게가 동일할 수는 없다. 다만 정치적 딜레마의 ‘손실 없는 해법’은 없다는 현실만큼은 모든 세력에게 공평하다. 프랑스 우파가 ‘에어컨 정치학’에서 승리한다 해도 나중 뒷감당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기후위기의 딜레마가 프랑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폭염은 누구에게나 공평해도, 그로 인해 치러야 할 비용은 평등하지 않다. 자연의 방어막을 되살릴 순 없겠지만 폭염 피난처와 휴식을 위한 소득지원을 늘려 사회적 방어막을 두껍게 하는 것으로 서로 그늘이 되어주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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