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가 붐을 일으키며, 한국의 다양한 문화가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경복궁과 창덕궁 등지에는 한복을 차려입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넘쳐난다. 덕분에 궁궐 정원도 새삼 관심거리다.
창덕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궁궐이다. 유네스코는 ‘건축물과 주변 자연환경이 조화를 이루며, 자연 지형을 살린 배치가 탁월’하다는 점을 등재 이유로 들었다. 특히 숲이 울창한 자연 지형과 물길을 거의 그대로 활용한 창덕궁 후원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빼어난 궁원(宮苑)이다.
한국의 정원은 인간의 미적 기준을 자연에 강제하기보다,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창덕궁 후원은 자연 물길을 따라 주합루, 애련정, 존덕정, 옥류천 권역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곳곳에 여러 임금의 자취가 스며 있다.
그중 애련정(愛蓮亭)은 붕당 정치의 갈등이 깊어지던 숙종 18년(1692)에 지어진 정자다. 연꽃이 피는 여름의 정원이라 할 만하다. 헌종 연간의 <궁궐지>에 ‘연못 가운데에 섬을 쌓고 정자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어, 원래는 연못 가운데에 섬이 있었던 모양이다. 숙종은 ‘연꽃은 더러운 곳에 있으면서도 변하지 않고, 우뚝 서서 치우치지 아니하며 지조가 굳고 맑고 깨끗하여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에, 새 정자의 이름을 애련정이라 하였다’라고 <애련정기>에 남겼다.
사람들은 흔히 더러운 진흙 속에서도 깨끗함을 잃지 않는 점을 연꽃의 상징으로 칭송한다. 그러나 숙종이 주목한 것은 ‘우뚝 서서 치우치지 않는’ 연꽃의 처세였다, 숙종이 살았던 시대는 붕당 간 대립이 극심한 시기였다. 그는 어느 한 당파에 의존하기보다, 환국을 통해 집권 세력을 급격히 교체하며 당파를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려 했다. 환국정치는 돌발적이고 소모적인 정치 변동이었다는 비판을 받지만, 왕권을 중심으로 조정 질서를 다시 세우려 한 시도로도 평가된다. 단종 복위, 국가 기강 정비, 후대 영·정조대 정치 운영의 토대가 마련된 점도 숙종대의 중요한 역사적 의미로 함께 거론된다.
<애련정기> 말미에 숙종은 ‘임금의 마음이 바르면 조정이 바르게 되고, 조정이 바르면 온 나라가 바르게 될 것이니, 온갖 복과 상서로움이 모두 모여들어 왕도(王道)가 완성될 것’이라며 자기 뜻을 분명히 밝혔다. 진흙탕에서도 맑고 곧게 피어나는 연꽃을 바라보며 태평성대를 꿈꾸었을 숙종. 300여년이 지난 오늘, 그가 연꽃에 담고자 했던 뜻을 다시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