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선거관리위원회 개혁 논의가 촉발됐다. 더불어민주당은 개헌을 통해 선관위를 해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비상임위원 중심으로 중앙선관위의 구조를 바꾸겠다는 주장도 나온다.
결함 있는 구조를 바꾸고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미명하에 방치돼온 행태를 바로잡을 필요도 있지만, 이 시점에서 선관위의 본질을 따져보아야 한다.
우리 선거법은 놀랍게도 1958년에 만들어진 시스템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민주화를 이룬 것은 1987년 헌법이고, 개별 선거법을 통합해 단일 선거법이 만들어진 것은 1994년이지만, 그 기본적 체계가 1958년에 성립되었다는 점에 대다수 학자들은 동의한다. 1958년 선거법을 통해 선거운동의 개념, 자격, 기간, 방법이 세부적으로 규제되는데, 이는 선거법이 허용하는 것 외의 정치활동은 금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당시 자유당과 민주당이 선거법 개정에 합의한 이유는 1956년 대통령 선거의 진보당 조봉암 돌풍이 불러온 위기감으로 보인다.
이에 관해 여러 연구가 있지만, 한국 정치·사회를 오랜 기간 탐구한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에릭 모브랜드의 저서 <Top-Down Democracy in South Korea>(한국의 톱-다운 민주주의)가 날카로운 분석을 보여준다. 모브랜드 교수는 한국의 선거법은 정치인과 유권자의 접촉을 권장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선거에 미칠 부정한 영향이나 부패를 막기 위해 통제해야 할 위험 요소로 보는 인식과 제도라고 평가하며, ‘정치의 비정치화’ ‘선거의 비정치화’라는 모순어법으로 이를 요약한다. 나아가 선관위가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에 비해 그동안 거의 주목받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선거법을 집행하는 선관위의 권한과 행동은 선거법에 좌우된다. 한국의 선거법은 정치활동과 선거운동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를 세세하게 규제하기 위한 법이다. 어떤 선거운동을 허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조문도 ‘다만’이라는 단서 뒤에는 금지되는 행위의 목록이 장황하게 나열돼 있다.
후보자나 선거운동원이 어깨띠를 두르거나 같은 모양의 윗옷을 입고 선거운동하는 모습을 흔히 보았을 것이다. 선거법에 따르면 어깨띠는 길이 240㎝, 너비 20㎝ 이내여야 하고 윗옷의 가격은 6만원을 넘으면 안 된다. 이를 위반하면 부정선거운동죄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이처럼 촘촘한 규제 속에서 선관위는 단순히 선거 사무를 집행하는 기관을 넘어 정치활동을 규제하는 주체이자 후보자와 유권자 사이의 간극을 만드는 또 하나의 장치로 기능하게 된다.
선거법과 이를 근거로 한 선관위의 불합리한 규제는 선거운동에만 그치지 않는다. 선관위의 유권해석에 따르면 학교에서 선거 제도에 대한 일반적인 교육은 가능하지만,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의 공약을 비교·평가하거나 모의투표를 실시하는 것은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 선거 연령이 낮아지면서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상당수가 유권자가 됐지만, 이런 규제 탓에 학교에서는 ‘투표하라’는 말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한다. 이러고도 젊은 유권자의 낮은 정치 참여를 탓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선관위의 문제적 행태는 참정권 보장이 아니라 정치활동 규제를 우선해온 선거법과 선관위 운영 방식이 낳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유권해석을 통해 국민이 해도 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의 범위를 규정해왔던 조직에,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는 인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 결과 투표용지를 부족하게 인쇄하면 누군가 투표를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선관위가 무엇을 ‘관리’하는 기관인지 물어야 한다. ‘관리’라는 단어는 의미의 폭이 넓다. 어떤 사무를 맡아 처리하거나 위임받은 일을 그 취지에 따라 수행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어떤 일이나 사람을 통제하고 지휘·감독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동안 선관위가 이해하고 실행해온 ‘관리’는 분명 후자에 더 가까웠다.
지금처럼 정치활동을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선거법 체제가 유지되는 한, 선관위를 국회나 감사원의 감독 아래 두거나 인적 구성을 전면적으로 바꾼다 해도 조직의 속성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기는 어렵다. 이번 사태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선거관리의 기본 원칙부터 다시 세우고, 선관위가 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하고 섬기는 기관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유정훈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