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세대가 민주주의의 바깥서 분노의 언어를 배우게 할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 안에서 자신의 미래를 말할 수 있게 할 것인가
이번 선거 후폭풍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방선거가 끝난 지 3주가 넘었는데도 선거가 몰고 온 파장에 대한 보도는 여전하다. 이를 보면서 나는 2021년 9월 치러진 독일 연방의회 선거 당시 베를린에서 벌어진 일을 떠올린다. 당시 베를린에서는 투표용지 부족과 긴 대기 시간 때문에 일부 유권자가 투표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논란 끝에 연방헌법재판소는 베를린의 455개 투표구에서 부분 재선거를 시행해야 한다고 판결했고, 재선거는 2024년 2월에야 치러졌다. 2년 반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지만, 사태는 시위나 소동 없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제도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한국에서는 왜 그런 사태가 발생했는지에 대한 철저한 원인 규명과 해결 방도를 여전히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그사이에 이 사태는 단순한 선거행정의 사고가 아니라 부정선거였으며 재선거가 필요하다는 항의 집회로 이어지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 2030세대에 쏠리는 관심도 아주 특이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 후반기와 ‘Z세대’ 전반기에 속하는 이 세대는 흔히 이념과 정치적 운동에 냉담하다고 알려져 왔다. 그런데 이들 세대의 일부가 집회에 적극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에서는 선거 연령이 낮아졌어도 청년들의 정치 참여도나 정치적 대표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낮은 편에 속한다. 사회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한 청년들의 비판적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들의 ‘윤어게인’과 같은 정치적 발상을 문제 삼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현상을 단순히 무지나 극우화로만 보면 부족하고, 그렇다고 그것을 곧바로 순수한 청년의 분노로 미화해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왜 제도정치의 언어가 아니라 불신과 음모론의 언어에 끌리는가에 있다. 오늘의 청년세대가 상실한 것은 단지 경제적 안정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불안을 제도정치의 언어로 표현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의 상실이다.
청년세대의 정치 참여도와 대표성이 비교적 높은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정치를 단순히 정당정치의 틀 안에서만 이해하지 않는다. 기후위기, 주거 문제, 일자리, 공정성, 정체성 등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정치가 일상 속에서 논의된다. 일상화된 정치교육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는 청년세대가 기성 정당에 기반을 둔 정치 활동에는 비판적이고 냉소적이라는 뜻에서 ‘반정치적’일 수는 있지만, 결코 ‘비정치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대는 단순히 나이로 구분되는 생물학적 집단이 아니라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는 사회 문화적 집단이기에 시기적으로 구별되기도 한다. 따라서 문제는 단순히 ‘왜 청년들이 거리로 나왔는가’가 아니라, 어떤 역사적 경험이 이 세대를 제도정치 밖의 분노, 불신, 체념, 나아가 음모론적 상상력으로 이끌었는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면 제2차 세계대전의 참극을 경험한 젊은 세대를 서독의 보수적 사회학자 헬무트 셸스키(1912~1984)는 ‘회의적인 세대’라고 불렀다. 이 세대는 거창한 정치적 이념이나 구호를 우선 불신하고, 정치보다는 직업과 가정의 가치, 이상보다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가치관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다음 세대는 정반대로 모든 제도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며 정치 참여를 우선시했던, 이른바 ‘68세대’였다.
청년, 왜 불신의 언어에 끌렸을까
그러나 68세대가 꿈꿨던 자본주의와 권위주의의 근본적 변화와 달리,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승리, 베를린 장벽의 붕괴, 소련의 해체는 이 세대에게 집단적 충격을 안겼다. 하지만 여성운동과 환경운동의 확산, 시민사회의 활성화와 같은 68세대 담론의 유산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시대를 거치면서 밀려든 지구화라는 새로운 현상은 세대 담론을 한 사회나 국가에만 한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따라서 지구적 범위에서 세대 경험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조사하는 비교 연구도 활발해졌다.
비록 세대 연구 자체는 아니지만, 정치 신뢰와 가치 변화를 비교하는 장기적인 ‘세계 가치조사’(WVS·World Values Survey)가 있다. 이 조사는 민주주의 의식, 정치 신뢰, 세대 간 가치관 차이, 종교와 세속화, 환경과 이주 등에 관한 장기 비교 자료를 제공한다. 1981년부터 시작된 이 연구는 한국을 포함한 100여개국의 연구기관이 표준화된 설문을 바탕으로 대면 조사 방식으로 진행한다. 8차 조사의 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7차 자료에 의하면 한국은 민주주의와 시민운동에 대한 높은 지지도와 달리 의회나 정당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회적 자본’이라고 불리는 사회적 신뢰도도 일본이나 중국보다 낮았다.
정치적 가치관을 주로 추적해온 이 연구와 달리, ‘딜로이트 글로벌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 연구’는 직업, 경제 불안, 지도력, 인공지능 등에 대한 청년세대의 태도를 조사한다. 한국을 포함한 44개국에서 2만2500명 이상이 응답한 2026년도 조사에 따르면, 젊은 세대는 빠른 승진보다는 안정된 생활을 중시하고, 인간적인 기술과 의미 있는 일을 여전히 선호한다. 그러나 경제적 압박과 주거비 부담은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일반적 경향 가운데 한국에서는 특히 취업 경쟁과 주거비 부담이 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주의 언어 잃어가는 게 문제
이런 흐름은 이미 ‘삼포 세대’ ‘88만원 세대’ ‘N포 세대’라는 축약어로 표현되었다. 비슷한 현상은 이웃 나라 일본과 중국에서도 나타났다. 1990년대 초반 거품 경제가 붕괴한 이후 장기간의 침체와 디플레이션에 빠진 일본 사회에서 ‘잃어버린 30년’을 처음 경험했던 세대를 ‘취업 빙하기 세대’ 또는 ‘로스트 제네레이션’이라 불렀다. 이들의 저임금과 고용 불안은 결혼과 출산 포기, 사회적 고립으로 나타났다. 현재 중년기에 들어선 이 세대는 많은 경우 아직도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중국 역시 심각하다. ‘중국몽’의 아킬레스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청년 실업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사 연구들을 종합하면, 중국 청년은 경제적 불안과 치열한 경쟁이라는 점에서는 한국 청년과 비슷하다. 그러나 정치적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그 불만이 ‘탕핑’(躺平)이나 ‘바이란’(摆烂)과 같은 생활양식이나 문화적 표현으로 나타난다는 점이 다르다. ‘드러눕는다’는 뜻인 탕핑이나 ‘상황이 이미 망가졌으니 더 애쓸 필요가 있느냐’는 뜻의 신조어인 바이란은 희망으로 가득 찬 거대한 중국몽에 대한 직접적 저항이라기보다는 체념과 조용한 거부의 언어가 되었다.
이제 한국의 청년세대를 단순히 비정치적 세대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들은 정치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기성 정치의 언어와 제도적 통로를 더는 신뢰하지 않는 방식으로 정치화되고 있다. 문제는 이 정치화가 민주주의를 넓히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불신과 음모론, 적대의 정치로 흘러갈 것인가에 있다.
이 점에서 나는 오늘의 청년세대를 ‘상실의 세대’라고 부르고 싶다. 이들이 상실한 것은 일자리와 주거, 결혼과 출산의 전망만은 아니다. 더 깊은 차원에서 이들은 자신의 불안을 사회적 요구로 번역하고, 그것을 제도정치 속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까지 잃어가고 있다. 민주주의는 선거를 치르는 절차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선거 결과를 믿을 수 있다는 신뢰, 패배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공동의 규칙, 그리고 젊은 세대가 자신의 미래를 민주주의의 언어로 말할 수 있다는 감각 위에서만 지속될 수 있다.
상실의 세대가 민주주의의 바깥에서 분노의 언어를 배우게 할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 안에서 자신의 미래를 말할 수 있게 할 것인가. 이번 선거 후폭풍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 청년세대의 상실은 단순한 장기 불황의 결과가 아니라, 생애 전망의 상실과 정치적 신뢰의 상실이 겹쳐진 현상이다. 문제는 청년들이 분노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분노가 민주주의의 언어를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