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 국제노동기구 수석이코노미스트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수석이코노미스트가 지난 24일 서울 중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지난 5월21일 총파업 한 시간여를 앞두고 삼성전자 노사의 임금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반도체(DS) 부문에 사업성과의 10.5%를 특별경영성과급으로 지급하는 내용을 담은 잠정 합의안은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가결됐다. 이번 합의로 DS 부문 메모리사업부 직원은 최대 6억원가량의 성과급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불과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삼성전자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리며 위기론에 휩싸여 있었다. 하지만 인공지능(AI)발 반도체 수요 급증이라는 외부 요인이 삼성전자를 구했다. 실적은 반등했고 주가는 치솟았다.
위기일 땐 나눌 게 크게 없어 삼성전자 노사 협상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기) 덕분에 올해 300조원을 웃도는 막대한 영업이익을 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직원들도 역대급 보상을 받게 되자 삼성전자 성과급은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다. ‘초과이윤의 기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나오게 된 것이다.
지난 24일 만난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성과급 사태는 삼성이라는 기업의 가치 창출 과정이 ‘국민적이고 사회적인 과정’이라는 걸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초과이윤이 삼성전자 노사의 기여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만큼 노사 간 분배의 문제로만 좁힐 수 없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그는 “초과이윤을 국민 배당 형식으로 나눠주기보다 사회적 투자 펀드를 만들어 청년 일자리 등 미래를 위한 투자에 써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수석이코노미스트는 AI로 인한 일자리 소멸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관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짚었다.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만 전제하면 AI로 인해 재편되는 직무를 어떻게 양질의 일자리로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 가장 최저임금의 보호를 받아야 할 배달라이더 등 플랫폼 종사자가 최저임금 사각지대에 있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삼성전자 성과급 사태를 어떻게 지켜봤나요.
“삼성전자는 DS 부문과 완제품(DX) 부문 중 한 곳에서 구멍이 생기면 서로 메꿔주는 구조예요. 산업 생태계 차원에서 보면 삼성은 다른 반도체나 정보기술(IT) 기업과 달리 굉장히 수직적 하청 구조를 갖고 있어요. 가장 밑바닥에 있는 중소기업이 혁신을 해도 그 부가가치가 위로 올라갑니다. 약탈적 성격도 있는 거죠. 지금까지 정부가 삼성에 대해 정책금융과 별개로 세액공제, 연구·개발(R&D) 예산, 인프라 지원을 포함해 천문학적인 규모의 지원을 해왔습니다. 삼성이 벌어들인 이윤이 고만고만했으면 넘어갔을 텐데 이번에 ‘로또’를 맞았잖아요. 그러니 그 이윤을 삼성 직원만 누리는 게 타당한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게 된 거죠.”
- 단순히 특정 기업 노사 간 분배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이죠?
“그렇죠. 모든 사람들이 당사자인 측면이 있어요. 성과급 사태는 삼성이라는 기업의 가치 창출 과정이 ‘국민적이고 사회적인 과정’이라는 걸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고 봅니다. 이게 잘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삼성은 그간 ‘정치적인 책임’을 안 지면서 힘을 계속 키울 수 있었어요. 이젠 책임과 힘의 균형을 맞출 때도 됐어요.”
- 이번 사태는 DS 부문 메모리사업부 직원이 많게는 6억원을 성과급으로 받게 돼 더 주목을 받았습니다.
“삼성을 정점으로 한 경제 피라미드 구조는 예전에는 기업만의 문제였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피라미드 구조가 노동에서도 매우 선명하게 나타났습니다. ‘미러링’(거울처럼 따라 하기)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이번 일은 한국만의 현상인가요.
“천문학적인 이윤을 거두는 글로벌 IT 기업 중 의미 있는 노조가 있는 곳이 사실상 없어요. 반면 삼성은 노조가 있어 분배 투쟁이 일어나는데요. 하청으로 갈수록 노조가 약해지고 가장 아래는 노조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노동에서도 파이를 나누는 방식이 굉장히 집중화돼 있어요. 그리고 자본과 노동 모두 수직적 위계 구조면 자본에 유리합니다. 노동이 수직적으로 분열돼 있으니 자본의 교섭력이 훨씬 크거든요. 정리하면 분배 악화의 세 가지 그림이 완성돼요. 첫째는 기업 간, 둘째는 노동 간, 셋째는 전체 자본과 노동 간 분배 악화입니다.”
- 삼성전자 노조가 이번 교섭 과정에서 사회적 비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노조는 할 일을 한 것 같아요. 조합원 중심으로 생각을 하게 되면 그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어요. 삼성 노조가 특별히 상급단체와 관련돼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어떤 면에선 회사가 많이 미숙했어요. 밀어붙이는 전략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협상이 길어지고 지지부진하게 된 책임에서 회사의 몫이 크다고 봐요. 노조의 문제만으로 보는 것은 불공평한 면이 있습니다.”
- 삼성전자 초과이윤을 어떻게 배분하는 게 합리적일까요.
“한국적 현상인 만큼 한국적 해법을 찾아야 해요. 저에게 간혹 외국에 참조할 만한 사례가 있는지 물어보는데 그런 게 없어요(웃음). 현재 배분 논의가 얽혀 있는 거 같은데 초과세수는 복지 등 국민이 현재 가장 필요로 하는 분야에 쓰면 되고, 초과이윤은 전혀 다른 문제예요. 초과이윤이라는 표현이 정확하진 않고 사실 로또에 가까운 것인데요. 하여튼 추가로 생긴 이윤을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됩니다.”
- 누구의 미래를 위해 투자를 한다는 건가요.
“기업의 미래가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입니다. 초과이윤 발생의 토대에 누가 얼마나 기여했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그걸 따지기보다 ‘사회적 투자 펀드’를 만드는 게 어떨까 해요. 국민 배당 형식으로 돈을 나눠주는 것에는 유보적입니다.”
- 사회적 투자 펀드는 어디에 투자를 하나요.
“우선 사람에 대한 투자입니다. 청년 일자리, 중소기업 노동자의 기술 습득·숙련 제고를 위한 교육적 투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이 있어요. 다음으로 하청기업에 대한 투자입니다. 재원이 부족한 하청기업이 투자할 수 있도록 숨통을 틔워줄 필요가 있어요. 마지막으로 이 펀드로 삼성을 지원할 수도 있습니다.”
‘로또’ 맞은 삼성, 기여한 사회와 나누는 방식 고민을
배당보다 청년·하청기업·미조직 노동자 위한 투자가 마땅
AI 시대, 기본소득만으론 답 없어…기술 발전 방향을 바꿔야
소득 안정성과 함께 좋은 일자리 창출을 결합시키는 게 중요
‘청년엔 소득, 장노년엔 일자리’ 거꾸로 간 한국 고용정책
해법은 중소기업 투자·사회서비스 일자리 확대
플랫폼 경제 커진 만큼 최저보수제 시급
- 삼성을 지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앞으로 삼성이 어떻게 될지 몰라요. 나중에 어려워지면 다시 정부에 손을 벌릴 수 있어요. 그럴 때 이 펀드에서 돈을 빌려가라는 겁니다. 그러면 재투자가 되는 거잖아요. 좋은 시기에 흥청망청하지 말고 이렇게 해야 주주 배당 압력도 줄 것 같아요. 배당은 해야 하지만 절대로 우선순위가 돼선 안 됩니다. 주주 배당을 우선순위로 두고 기업을 운영한 경제치고 잘된 나라가 드물어요. 너무 앞서서 주주 걱정해주는 것은 정책적 차원에서 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 이 펀드의 운영 주체는 누구인가요.
“노사정 3자와 시민사회입니다. 사측은 하청기업, 노측은 미조직 노동자를 대변하는 쪽도 들어와야 해요. 분배와 투자를 엮어 고민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온 만큼 구체적 운영 방안에 대한 사회적 토론을 해야 해요. 이 토론을 피해선 안 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월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를 만난 자리에서 “AI 시대인 지금이야말로 기본소득이 필요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는 AI가 대다수의 일자리를 없애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유일한 대응책이 기본소득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관점이라고 짚었는데 이 수석이코노미스트도 같은 생각이었다.
- 정부가 기술 발전의 방향을 바꾸려는 노력 없이 재분배만으로 접근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있는데요.
“저도 아제모을루와 생각이 비슷한데요. AI를 쓰나미에 비유하면서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향을 피해야 합니다. IT 회사들이야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낼 수 있으니 그런 비유를 좋아하지만 공공정책 입안자나 학자들은 그래선 안 됩니다. 기본소득과 일자리를 마치 ‘트레이드 오프’(양자택일)로 여기는 접근법을 제일 조심해야 해요.”
- 왜 그런 접근법을 경계해야 하나요.
“두 가지 편향된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인데요. 하나는 ‘AI가 일자리를 무조건 없앤다’는 전제예요. 하지만 그렇지가 않아요. AI가 일자리를 많이 없애기도 하겠지만 많이 만들기도 합니다.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만 전제하면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 비전이나 대안을 생각할 필요가 없어지는 문제가 생겨요. 정책과 고민이 없다면 AI가 직무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질 일자리는 질이 좋을 수가 없어요. 사람에 대한 배려 없이 단기적 이윤의 논리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 또 다른 편향된 전제는 무엇인가요.
“일자리를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으로만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이 관점은 AI로 일자리가 없어지면 돈만 주면 되는 것 아니냐는 것으로 이어지는데요. 하지만 일자리의 의미는 훨씬 더 커요. 사람들은 일자리를 통해 사회에 가치 있게 기여한다는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이 부분을 과소평가해선 안 됩니다. 일정 수준의 소득 안정성 보장과 좋은 일자리를 어떻게 결합시킬지가 중요해요.”
- 정부가 제조 명장의 암묵지를 AI에 학습시키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운동은 어떤 대응을 고민해야 할까요.
“그 사업에 대한 노조 우려는 이해되지만 다른 선택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요. 한국의 숙련 전수 시스템이 최소 지난 10년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젊은 노동자가 암묵지를 이어받도록 하는 방안을 만들자고 하기엔 꽤 늦었어요. 그런 만큼 노조는 암묵지를 AI로 만드는 과정에 개입하는 게 중요합니다. 물론 노조가 충분한 발언권이 있어야겠지만요.”
- 노조가 암묵지를 AI로 만드는 데 개입한다는 건 어떤 맥락인가요.
“암묵지를 데이터화해서 사용하게 되면 이걸 기본으로 직무를 새롭게 디자인해야 돼요. 이 과정은 새로운 숙련에 대한 보상 체계 논의와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AI 시대에 노조가 해야 할 중요한 싸움은 직무 디자인에 개입하는 겁니다. 이것이 직무 재편 과정에서 일자리의 질을 유지 혹은 개선할 수 있을지 여부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에요.”
- 구체적인 사례가 있을까요.
“아제모을루 최근 논문을 보면 생성형 AI를 활용한 전기공 보조 도구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기공은 이 도구와 정보를 주고받으며 협업을 하는데요. AI가 전기공 직무가 더 풍성해지고 안전해지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똑같은 기술이 노동자를 자르는 쪽으로 활용될 수 있어요. 아무튼 AI가 다르게 쓰이도록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각보다 굉장히 많아요.”
- 지난 5월 청년층 취업자 수가 2021년 1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하는 등 고용지표가 좋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선 지표가 아직 나쁜 편은 아닙니다. 다만 추세는 걱정이에요. 추세 악화 배경에 ‘실망 효과’가 있습니다. 현재 노동시장에 있는 일자리에 대한 청년들의 실망이 커지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청년들이 받아들일 만한 일자리가 점점 줄고 있어요. 일을 해보다 이건 아니라고 느낀 뒤 더 기다려보는 방향으로 가는 건데 청년들 입장에선 합리적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 어떤 정책적 대응이 필요할까요.
“사실 대응이 쉽지가 않아요. 왜냐하면 정부의 정책 수단은 대부분 일자리가 있을 때 그 일자리에 청년을 데려다주는 겁니다. 문제는 지금은 데려다줄 일자리가 없다는 겁니다. 쟁점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한국의 정책은 청년에게 소득을 주고, 장노년층에겐 일자리를 주고 있어요. 청년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주고, 장노년층에게 소득을 주는 게 정상인데 거꾸로인 거죠.”
- 청년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줄 방법이 있을까요.
“우선 지역에 기반한 일자리 친화적인 산업정책이 필요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사회적 투자 펀드 이야기와 관련해 중소기업의 투자 재원을 마련해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정부가 돌봄노동 등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도 필요해요. 한국은 공공부문 고용 비중이 10%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대비 절반 수준이에요. 특히 북유럽 국가들은 이 비중이 꽤 높은데 사회서비스 일자리가 많아서 그래요. 이 나라들은 돌봄노동을 전문적이고 통합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자리로 만들어요.”
- 한국은 어떤 상황인가요.
“한국은 공공이 사회서비스를 민간에 위탁하는 경우가 많아요. 위탁하는 순간 비정규직을 상시적으로 만드는 거잖아요. 위탁을 받은 기관이 사회서비스를 전문화하는 방향으로 투자하기도 어렵고요. 오랫동안 일할 수 있고 전문적 일자리로 만들 수 있는데도 단기 위탁을 하는 ‘미스매치’만 해결해도 어느 정도 공간이 열린다고 봅니다.”
- 최근 ILO 총회에서 플랫폼 종사자에게 최저임금 이상의 보수를 보장하는 등 최소한의 노동기본권을 규정한 193호 협약이 채택됐습니다.
“다시 피라미드 이야기로 돌아가면 가장 바닥에 있는 기업이나 노동자를 어떻게 지원할지가 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차원에서 플랫폼 종사자 최저보수제는 무조건 빨리 도입해야 합니다. 올해 최저임금위원회가 이 현안을 다루지 않기로 결정해 많이 아쉽고 실망스러웠어요. 이번에 협약이 채택된 결정적 이유는 각국 정부의 지지였습니다. 모든 나라들이 플랫폼 경제가 커지고 있어 플랫폼 노동에 대한 아무런 가이드라인 없이 지내는 게 불가능해졌어요. 그렇다고 국내에서 선제적으로 뭘 하기엔 정치적 부담이 크고요. 이렇다 보니 각국 정부가 국제 기준을 만드는 데 호의적이었습니다.”
-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법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만 다루고 있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해왔는데요.
“이걸 법리적으로 따질 시기는 지난 것 같아요. 이것 때문에 안 된다, 저것 때문에 안 된다고 하는 건 안 하겠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예요. 이 현안 자체가 법리 밖에 있는 문제인데 기존 법리에 맞게 할 수 있을까요. 한국 사회가 AI에 대해선 놀라울 정도로 개방적인데 왜 이 이슈에 대해선 그렇지 않은지 모르겠어요.”
김지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