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영선사 법송스님이 말하는 절밥의 맛과 일상
영선사 경내 장독대는 반질반질 빛이 났다. 법송 스님은 “사찰음식은 맛있어야 한다”며 활짝 웃었다. 박경은 선임기자
법송 스님이 건네준 조청은 단맛이 한 박자 늦게 올라왔다. 혀끝에 부드러움이 번지더니 마지막에는 칡 향이 맑게 남았다. 입안에 피었다 사라지는 아지랑이 같은 단맛이었다. 이 조청은 꼬박 하루 동안 불을 보며 졸여 만든다. 조청에 들어간 엿기름도 시장에서 산 것이 아니라 보리를 씻고 불려 만든 것이다. 엿기름까지 만든다는 이야기에 놀라자 스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바쁘기로 따지면 옛날 사람들이 훨씬 바빴지요. 지금이야 얼마나 많은 것들이 도와주나요.”
사찰음식은 수고가 생활이 된 음식이다. ‘절집’에서 오랜 시간 매일 지어 먹고, 찾아온 사람들과 나누며 삶에 밴 전통 식문화다. 지난해 국가무형유산이 됐고 최근 몇 년 새 미디어의 조명을 받으며 관심도 높아졌다. 하지만 일각에선 우려도 나온다. 박물관에 갇힌 문화재, 혹은 특별한 날에 찾는 이벤트형 미식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상의 식탁에 스며들지 못한 식문화는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법송 스님이 주지로 있는 영선사는 대전 외곽 주택가에 자리잡은 작은 사찰이다. 타지에 널리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맛있는 밥과 넉넉한 나눔으로 오래전부터 지역에서 입소문이 났다. 은사 성관 스님이 터를 닦고 사형 현도 스님과 함께 이어온 이 절에서 음식은 수행이자 나눔이며 포교였다.
영선사의 밥상은 절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소방서와 경찰서, 경로당을 비롯해 인근 대학가 학생들에게까지 두루 밥상을 차려냈다. 매년 가을 벌인 사찰음식 잔치는 이제 20년을 이어온 지역의 명물이 됐다. 스님에게 배운 신도들이 마음을 내고 수고를 보태며 영선사 밥상은 동네로 퍼졌고 지역에 자리잡았다. 법송 스님을 만난 22일은 마침 성관 스님 다례재가 치러진 날이다. 배로 양념한 냉면에 미니김밥, 호박왁저지, 갓김치, 감자를 포처럼 얇게 떠 부친 전까지 어느 하나 손 안 가는 음식이 없었다. 생전 큰 스님이 좋아했던 음식과 대를 이어 전해지는 영선사의 맛이 공양간을 채웠다.
흔히 사찰음식 하면 고기와 오신채를 쓰지 않는, 밍밍하지만 건강한 음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법송 스님은 이에 대해 “사찰음식은 맛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 맛은 강한 양념으로 덧씌우는 게 아니라 재료가 가진 맛을 끝까지 살려내는 맛이다. 콩나물 하나를 무쳐도 물에 삶는 대신 콩나물 자체의 수분으로 익혀 향을 살린다. 나물 반찬도 파와 마늘로 맛을 세우기보다 장과 조청, 들기름과 깨소금으로 재료의 특성을 최대한 드러낸다. 덜 넣어서 싱겁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맛을 가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수행과 ‘절집’ 살림을 꾸리며 음식을 베풀고 가르쳐 온 법송 스님은 최근 몇 년간 강의와 집필, 방송 출연에 더해 해외 요리학교에서 사찰음식을 가르쳐야 할 정도로 바빠졌다. 사찰음식에 관한 대중들의 관심이 예전에 비해 훨씬 커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관심은 무척이나 반갑다. 하지만 출가 인구가 줄고 전승 환경이 달라지는 데 따른 어려움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든다.
“어른들과 함께 살며 손맛을 배우고, 계절마다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몸으로 익히는 것이 사찰음식의 전승방식이지요. 소위 ‘중물’이 들면서 몸에 배는 건데 요즘은 절집 안에서도 레시피에 집착하고 기교에 급급한 것을 보면 좀 안타까워요.”
물론 그런 아쉬움이 사찰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일반 가정에서도 대물림하며 제철의 맛을 익히는 일은 극히 드물어졌다. 사찰음식이라는 이름의 전통 식문화는 지금 관심의 대상이 됐지만 특별한 전시장이나 이벤트의 식탁이 아닌, 일상의 밥상 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스님의 답변은 의외로 간단했다. “특별한 조리법이나 기술이 아니에요. 매일의 선택이지요. 제철에 나는 걸 많이 먹는 겁니다. 그 계절에 가장 많이 자라는 농산물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고 알면 돼요. 노지에서 햇빛과 바람을 맞고 자란 채소, 모양이 좀 못생겨도 계절의 힘을 품은 것들을 부지런히 밥상에 올리면 됩니다.”
법송스님이 아욱을 다듬고 있다. 박경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