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법하게 취득했고 소장 이용 불가피
개인정보 무단 이용으로 볼 수 없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효진 기자
유치원 원장이 학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내면서 소장에 학부모의 주소 등을 적었더라도 개인정보 무단 이용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에 돌려보냈다고 1일 밝혔다.
경기도에 있는 유치원 원장인 A씨는 2022년 6월 학부모인 B씨를 상대로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B씨가 인터넷 카페에 A씨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을 게시해 영업 손실을 입고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는 게 소송의 취지이다.
A씨는 B씨의 성명과 주소 등을 변호사에게 제공한 뒤 법원에 제출할 소장에 기재했다. A씨는 B씨 자녀가 유치원에 입학할 때 학비지원금 신청 등을 목적으로 수집한 B씨의 개인정보를 B씨의 동의 없이 소장 작성에 활용한 것이다.
이에 검찰은 A씨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A씨가 B씨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수집 목적 범위를 벗어나 이용했다고 봤다. 1·2심 법원도 A씨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A씨의 행위를 ‘정당 행위’로 볼 수 있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죄를 물을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A씨가 B씨의 성명과 주소를 기재한 소장을 법원에 제출한 행위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A씨가 B씨의 동의를 받아 성명과 주소를 적법하게 제공받았고, 취득 과정에서 위법행위를 했다고 볼 사정은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어 성명과 주소는 개인정보에 해당하지만 사상·신념, 노동조합·정당의 가입·탈퇴 등처럼 사생활을 현저히 침해할 우려가 있는 민감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또 소장 작성 때 개인정보를 기재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A씨가 소송 제기 후 법원의 사실조회 등을 통해 B씨의 주소를 특정할 수는 있었으나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해서 “B씨에게 사회 통념상 용인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B씨의 개인정보가 유출돼 피해를 입을 위험도 적다고 봤다. 대법원은 “법원이 B씨의 성명, 주소가 기재된 소장의 보관을 담당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열람·복사 등 절차에는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관련 규정이 적용돼 개인정보가 사건과 무관한 제3자에게 제공될 위험성도 크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