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에네스가 지난 16일 부천아트센터에서 브루흐 바이올린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부천아트센터 제공
바이올린을 든 제임스 에네스가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차분하고 절제된 인사를 건넨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치는 듯했으나 이내 표정을 거두었다. 지난달 16일 부천아트센터. 드레스덴 필하모닉과 함께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연주하기 위해 등장한 그의 모습은 냉정하고 건조했다. 마치 외과 수술실에 들어선 집도의를 연상시켰다. 보통 연주자가 등장하면 무대와 객석은 곧 터져 나올 기교와 감정을 예감하는 듯 들뜬 분위기가 감돌기 마련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는 온도를 조금 낮췄다. 독주자 특유의 과시적 긴장 대신 자신의 일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풍기는 냉정함이 먼저 느껴졌다.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은 낭만적 선율과 화려한 기교가 어우러진 인기 레퍼토리다. 유튜브에서도 많은 연주 영상을 볼 수 있다. 고조되는 악상에 취한 듯 몸을 흔들고 표정의 변화가 극적인 연주자들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감정을 함께 끌어올린다.
에네스는 달랐다. 선율이 달아오르는데도 그의 몸은 거의 흔들리지 않았고 활의 움직임은 침착하고 절도 있었다. 그런데 희한했다. 그가 내는 소리는 점점 농밀해지고 깊어졌으며 연주장을 채워가는 음표들은 끓어오르듯 마음을 두들겨댔다. 마치 두 손이 꽁꽁 묶인 채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아야 하는 상황 같다고나 할까. 감정은 뜨거웠지만 흐트러지지 않았다. 선율과 리듬은 매혹적이었지만 질척이지 않았다. 차갑고 이지적인 태도 안에서 폭발하는 관능미랄까. 낯설었다.
유튜브로 연주 영상을 보는 것이 익숙해진 시대, 연주자들은 몸짓으로 관객에게 음악에 대해 말한다. 지금 이 대목이 뜨겁다고, 여기서 감정이 폭발한다고, 이 선율은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고. 바이올린은 더더욱 ‘보이는’ 악기다. 게다가 연주자의 얼굴과 바로 붙어서 함께 ‘울고 웃는’다. 고개의 각도, 머리카락의 흔들림, 미간의 주름까지 소리를 따라 움직인다. 몸의 변화가 음악의 온도를 짐작하게 하는 단서가 된다.
이런 감각은 기분 탓만은 아니다. 런던대 치아 정 차이(Chia-Jung Tsay) 교수가 2013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사람들이 음악 연주를 판단하는 데는 청각적 요소보다 시각적 요소가 더 크게 작용한다. 실험 참가자들은 콩쿠르 우승자를 예측할 때 소리만 듣는 경우보다 소리 없는 영상을 볼 때 더 높은 정확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물론 눈을 감고 들어야만 제대로 된 음악 감상이라는 것은 아니다. 공연장에서 우리는 소리만 듣지 않는다. 흔들리는 몸도, 거의 움직이지 않는 몸도 메시지를 전한다. 특히 에네스처럼 차가운 ‘몸’도 뜨겁고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달 9일에는 이런 질문을 다른 방향에서 던지는 연주자의 공연이 예정돼 있다. 세르비아 출신의 네만야 라두로비치가 KBS 교향악단과 함께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을 연주한다. ‘21세기 파가니니’로 불리는 그는 긴 머리, 자유로운 몸짓, 강한 시각적 에너지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연주자다.
에네스가 소리의 긴장을 몸 안에 붙들어 둔다면 라두로비치는 몸의 에너지를 밖으로 밀어내며 무대에 펼쳐 보인다. 문득 궁금해진다. 그동안 우리는 음악을 듣고 있었나, 보고 있었나.
네만야 라두로비치. KBS 교향악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