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다. 날이 더워지자 잠시 잊고 있던 지긋지긋한 불청객이 다시 눈에 띈다. 바로 모기다. 아마도 모기를 좋아하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윙윙거리는 날갯짓 소리와 가려움증도 짜증나지만, 이들이 인간에게 옮기는 질병이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모기가 매개체가 되어 전파하는 질병들은 뇌염, 나일열, 뎅기열, 지카 바이러스 등 종류도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바로 말라리아다. 말라리아는 아노펠레스(Anopheles)속에 속하는 얼룩날개모기의 몸속에 기생하는 말라리아 원충(Plasmodium)이 일으키는 질병이다. 말라리아는 고대 이집트부터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오랜 질환이지만, 병인(病因)도 효과적인 대응법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존재였다. 오죽하면 이름마저 그저 나쁜(mal) 공기(aria)였을까.
인류가 말라리아에 대하여 뭔가 대응할 만한 것을 찾아낸 건 17세기에 들어서였다. 당시 남아메리카 페루 지역에 선교하러 들어갔던 예수회 소속 선교사들은 말라리아에 걸린 원주민이 어떤 나무의 껍질을 벗겨 달인 물을 마시고 병이 낫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 ‘기적의 나무’는 바로 키나나무였다. 훗날 알려진 바이지만, 키나나무에는 말라리아 치료에 효과적인 성분인 퀴닌(Quinine)이 들어 있었다. 선교사들이 가져온 ‘예수회 나무껍질(Jesuit’s bark)’은 지긋지긋한 말라리아를 해결해줄 신의 축복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이 ‘예수회 나무껍질’은 기대한 만큼 말라리아 사망자 수를 극적으로 줄여주지는 못했다. 키나나무는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운 안데스 산맥의 고지대에서만 자생했기에 구하기도 어려웠고, 때문에 가격도 매우 비싸서 같은 무게의 금과 맞먹을 정도였다. 게다가 키나나무 껍질은 ‘악마의 맛’이라 불릴 정도로 매우 써서 먹기가 힘들었고,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퀴닌을 섭취하면 두통과 이명, 메스꺼움, 구토, 저혈당, 시각과 청각의 마비, 적혈구의 대량 파괴 등에 시달리다가, 심하면 이로 인해 사망하기도 했다. 퀴닌은 뜨거운 칼과 같았다. 분명 자를 수는 있지만, 화상을 입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그런 칼 말이다. 대체재가 필요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퀴닌의 분자 구조를 바탕으로 합성된 클로로퀸(Chloroquine)은 ‘신의 가호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진짜 선물’처럼 보였다. 낮은 부작용, 간편한 복용법, 싼 가격으로 클로로퀸의 사용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당시 각광받던 효과적 살충제 DDT의 보급과 맞물려 1950년대를 전후해 말라리아 환자의 수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경이로운 결과에 지나치게 흥분해서였을까, 사람들은 여기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바로 클로로퀸을 치료제가 아닌 예방제로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질병 치료에 있어 치료와 예방은 다르고, 각각은 용도에 맞게 써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말라리아가 너무나도 지긋했던 일부 지역에서는, 정부가 나서 예방용으로 클로로퀸을 식용 소금에 섞어 대규모로 보급했던 것이다. 의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식용 소금에 섞여 클로로퀸이 유통되자, 광범위한 지역에서 수많은 사람이 저농도의 클로로퀸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고, 이는 말라리아 원충의 변이를 가속화시켜 내성 원충 출현의 결정적 계기가 되고 만다. 이로 인해 말라리아에 효과적인 대응 수단이었던 클로로퀸은 삽시간에 힘을 잃고 무력화되고 만다. 이에 1990년대가 되자, 이전 시대에 비해 말라리아 환자와 사망자의 수가 다시 늘어나는 ‘암흑기’가 도래했다. 사람들은 오래전에 벽장 속에 넣어두었던 퀴닌까지 다시 소환했지만, 클로로퀸에 잠시 억눌렸던 말라리아의 발톱은 여전히 날카롭게 인류를 할퀴어댔다.
다행히도 우리는 늦지 않게 또 다른 천연 말라리아 치료제인 아르테미시닌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지난날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치료 표준지침을 만들고, 가급적 복합제제를 사용하면서 말라리아 원충에게 대응할 무기가 무뎌지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만병통치약도, 무조건 좋은 것도 없다.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꼭 필요할 때 꼭 필요한 만큼만 써야 그 ‘좋음’이 유지될 수 있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우린 너무 쉽게 잊는 것이다.
이은희 과학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