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당 불가 빚의 수렁에 빛이 된 ‘취약채무자 특별면책제도’
신용회복위, 원금 5000만원까지 신청 자격 확대, 수혜자 늘어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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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강사 A씨(53)는 몇년 전까지 아픈 부모님을 돌보면서 동네 아이들을 상대로 공부방을 운영해왔다. 병원비가 늘면서 돈을 빌렸다. 200만원, 250만원, 300만원. 금방 갚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은행 신용대출의 한도가 차자 카드론을 썼다. 학생들은 자꾸만 줄었다. 어느 순간 빚은 4000만원까지 불어 있었다. 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 작은 집으로 이사했다. 집이 작아지자 공부방을 할 수가 없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우울감마저 찾아왔다.
A씨는 2021년 우연히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의 ‘사전채무조정’을 알게 됐다. 단기 연체자들의 금리를 깎아주고 상환기간을 최대 10년까지 늘려주는 제도로, 이를 통해 지난 5년간 월 40만원씩 갚아왔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상환을 이어가기 힘들 정도로 상황이 나빠졌다.
전환점은 올해 1월이었다. 신복위의 ‘취약채무자 특별면책제도’ 신청 자격이 ‘원금 1500만원 이하’에서 ‘5000만원 이하’로 대폭 확대된 것이다. A씨처럼 빚이 비교적 많은 사람들에게도 길이 열렸다.
이 제도를 신청한 A씨는 원금의 약 73%를 감면받았다. 월 변제금은 11만원으로 대폭 줄었다. 3년 이상 갚으면 나머지 빚은 사라진다. A씨는 “10년 동안 다 갚을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했는데, ‘이제 좀 사람답게 살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학원에서 일자리도 구했다.
지난달 22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신용회복위원회 중앙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 채무 상담을 원하는 신청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신용회복위원회 제공
2019년 처음 도입된 신복위의 취약채무자 특별면책제도는 기초수급자·중증장애인·고령자 등 취약 채무자의 남은 빚을 탕감해주는 제도다. 물론 조건은 있다. 최소 3년 이상 일정 금액을 갚으면서 성실한 상환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회생·파산 같은 법적 수단과는 다르다. 신복위에서는 금융기관들과의 협의를 통해 채무자의 빚을 줄여준다. 채권자 입장에서는 회수를 기대하기 어려운 취약 채무자들로부터 일정 금액이라도 돌려받을 수 있다.
신복위 관계자는 1일 “올해 신청 자격 기준이 완화되면서 연 5000여명 수준이었던 취약채무자 특별면책 신청자 숫자는 올해 2만여명 정도로 4배 이상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영업자 B씨(53)의 경우 빚은 500만원에 불과했다. 가게가 어려워지면서 캐피탈 등에서 빌린 돈이었다. 월 100만원 남짓한 기초생활수급자 생계·주거급여로는 생활조차 빠듯했다. 연체로 인해 계좌까지 막히면서 그는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지난해 1월 B씨는 인터넷에서 우연히 ‘소액채무면책’ 제도를 접하고는 신복위 문을 두드렸다. 지난 2024년 도입된 소액채무면책은 원금 500만원 이하·연체기간 1년 이상의 소액 빚을 진 금융 취약계층에게 상환 유예기간을 부여하고, 이후에도 사정이 나아지지 않으면 남은 빚을 면책해주는 제도다. 면책을 받는 데 성공한 B씨는 “다행히 사업이 정상 궤도로 올라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신복위를 통해 채무를 조정·면책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감이 회복됐다”고 털어놓는다고 한다. 무거운 빚으로 인한 우울, 자존감 저하 등은 정상적인 경제활동 의지를 꺾는 주된 요인이다.
A씨도 “누군가에게는 40만원과 11만원이 별 차이 없는 금액이겠지만, 심적으로 훨씬 윤택해졌다”며 “앞으로 용기를 갖고 일을 더 열심히 할 원동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B씨 역시 “‘나는 뭘 해도 안 되는구나’라는 자포자기 상태였다”며 “지금은 일을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게 됐고 주변 시선도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