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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왜 영웅을 경계하는가

입력 2026.07.02 20:00

수정 2026.07.02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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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에 온 벗들과 차담을 나누다 보면 종종 정치가 화제에 오른다. 그런데 평소 합리적이고 신중한 사람이 정치 이야기 앞에서는 특정 인물에게 깊이 빠져드는 경우가 있다. 정책 판단보다 인물에 대한 신뢰가 앞서고, 때로는 그의 잘못마저 정당화하며 비판은 힘을 잃게 된다. 왜 우리는 한 사람에게 자신의 열망을 투사하고, 그를 시대의 구원자로 떠받들게 되는 것일까.

이러한 대중 심리의 원형은 로마 공화정 말기에서도 발견된다. 정치적 혼란이 깊어지던 시기,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탁월한 카리스마와 정치적 역량으로 대중의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제도보다 개인에 대한 신뢰가 커질수록 공화정의 토대는 흔들렸다. 권력의 중심이 한 사람에게 기울면서 법과 절차는 서서히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의 영향력은 공동체를 결속시켰지만, 동시에 민주적 질서를 약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했다.

영웅을 갈망하는 대중 심리는 오늘날에도 반복된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미래를 책임져줄 강력한 지도자를 원한다. 그러나 기대가 맹목적 추종으로 변하는 순간 민주적 판단 기능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한 사람에 대한 신뢰가 절대화되면 비판적 사고는 약해지고, 사람들은 사실보다 ‘편’을 선택한다. 옳고 그름보다 진영이 판단 기준이 되면서 합리적 의심은 설자리를 잃는다.

오늘날 이러한 현상은 미디어 환경 속에서 더욱 빠르게 생산된다. 과거에는 오랜 경험과 성과를 통해 지도자의 권위가 형성되었다면, 이제는 단 하나의 사건만으로도 ‘정치적 스타’가 탄생한다. 검증되지 않은 상징적 이미지는 대중의 기대와 환상을 자극하고, 그 기대는 곧 확신으로 굳어진다. 믿음이 검증을 보장하는 역전된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정치철학자 해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위험은 독재자 개인의 악함보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춘 대중의 ‘무사유(無思惟)’에 있다고 지적했다. 역사의 비극은 특정 지도자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집단 심리에서 발생한다. 비판의 중단은 권력 집중을 정당화하고, 권력의 집중은 판단을 특정 권위에 의존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낳는다.

오늘날 우리 정치를 지배하는 팬덤 정치 역시 이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특정 정치인을 중심으로 결집한 강한 지지층은 정치적 동력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비판을 어렵게 만든다. 선거에서도 정책경쟁보다 인물에 대한 방어가 앞서고, 유권자들은 복잡한 정책판단보다 인물에 대한 신뢰 여부로 단순하게 선택한다. “이 지도자는 틀리지 않는다”는 믿음이 자리 잡는 순간 민주주의는 본래의 작동 원리를 잃게 된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완벽한 지도자를 찾는 데 있지 않다. 인간의 불완전성을 전제로 권력을 끊임없이 견제하고 검증하는 제도적 장치에 있다.

동양의 선불교 또한 권위에 맹목적으로 의존하는 태도를 경계해왔다. 임제선사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스승을 만나면 스승을 죽이라”라고 말했다. 어떤 권위도 절대화하지 말고 스스로 사유하는 주체로 서라는 혁명적 선언이다.

우리는 종종 “국민은 늘 옳다”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역사는 대중의 오류와 집단적 열광이 빚어낸 수많은 실패를 증언한다.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도, 그를 신격화하는 것도 대중이다. 따라서 문제는 지도자의 자질만이 아니다. 영웅 서사를 끊임없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우리 자신의 태도 역시 돌아보아야 한다.

지도자를 신뢰하되 신격화하지 않고, 존경하되 절대화하지 않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본 토대다. 비판적 의심은 불신이 아니라 성찰의 출발점이며, 집단적 열광을 견제하는 안전장치다. 권력을 맡길 사람을 분별할 수 있는 시민으로 서는 일, 그것이 민주주의의 비극을 막는 가장 튼튼한 방패가 될 것이다. “민주주의의 중요한 문제는 누가 통치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나쁜 통치자를 어떻게 평화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가이다.”(카를 포퍼)

법인 스님 화순 불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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