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충남 서천의 판교극장 ‘이장호 영화감독 특별전’을 다녀왔다. 판교는 ‘시간이 멈춘 마을’이라는 콘셉트로 근대 건축물을 복원해 과거의 풍경을 간직한 곳이다. 1961년 세워진 판교극장 역시 그렇게 되살아난 공간이다. 이장호 감독과 기획자, 문화평론가가 함께한 토크쇼에 참가했는데, 과거의 기억이 강렬하게 떠올랐다.
<바보선언>은 내가 영화 기자, 평론가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영화다. 고3에 올라간 첫날, 오전 수업이 끝나자 바로 종로3가의 단성사로 향했다. 스필버그와 루카스가 주도하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최고 인기였고, 나 또한 열광했다. 그럼에도 <바보선언>을 보러 간 이유는, 이장호 감독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다.
데뷔작 <별들의 고향>은 너무 어릴 때라 극장에서 보지 못했지만,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사실은 알았다. 1980년대 들어 활동을 재개해 <바람 불어 좋은 날> <어둠의 자식들>로 연이어 성공을 거두었다. 무엇보다 당시 절절하게 읽었던 소설 <어둠의 자식들>을 연출했기에 끌렸다. 그러니까 막연히 감독에 대한 호기심과 야하고 도전적인 영상을 기대해서, <바보선언>을 보러 갔다.
검열을 피해 즉흥 연출과 연기로 만들어진 이장호 감독의 대표작 <바보선언> 포스터.
극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영화가 시작됐다. 다음 회 표를 사고, 로비 휴게실에서 영화가 끝나기를 무료하게 기다리다가 슬그머니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국악풍의 서글픈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스크린 속 산등성이에서 한 여인의 양식화된 장례식이 치러지는 중이었다. 나도 모르게 벽에 기대어, 그들의 기이한 움직임을 넋을 잃고 지켜봤다. 내가 처음으로 한국 영화에 완전히 매료된 순간이다.
1984년. 전두환 군부독재가 절정인 시기였다. 문화 전반에 검열이 극심했다. 영화를 찍으려면 시나리오를 검열기관에 제출해 사전 통과해야 했고, 완성 후에도 검열을 거쳤다. 당시 정부는 매년 한국 영화 4편을 만드는 영화사에만 외화 수입권을 허락했다. 이장호는 3부작으로 기획했던 <어둠의 자식들> 속편 시나리오를 제출했는데 아예 반려였다. 제작 마감 시한이 촉박해지자, 모범적이고 정석의 시나리오를 빠르게 써내 검열을 통과했다. 제목은 ‘온갖 잡새가 날아든다’로 붙였는데, 영화사에서는 경찰의 은어인 ‘잡새’가 부담스러워 <바보선언>으로 바꿨다. <바보들의 행진>을 제작해 성공한 영화사였기에 다시 ‘바보’를 쓴 제목이다.
시나리오는 통과했지만, 이장호는 그 내용대로 영화를 찍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나갔다. 이대 입구 육교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찍다가, 노숙인 동철이 가짜 여대생의 다리에 반해 무작정 쫓아가는 오프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좋아하는 채플린의 영화처럼 대사 없이 빠르게 움직이는 무성영화 스타일의 영상도 그렇게 탄생했다. 많은 장면이 매 순간 즉흥적으로 만들어졌고, 배우들도 날것 그대로 연기했다. <바보선언>은 이장호 스스로가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감독의 죽음을 선고하며 시작되는 영화인 셈이다. 마지막 장면은 국회의사당 앞을 허청대며 걸어가는 동철과 육덕의 모습이다. 아무리 몸부림치고 비명을 질러도 바뀌지 않는 세상에서, 기꺼이 바보이자 이방인이며 탈락자로 걸어가겠다는 선언이다. <바보선언>을 보며,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박제된 세상이 아니라 날것의 진짜 세상을 만났다. 그리고 나는 이전과 다른 마음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팔순이 넘은 이장호 감독이 차분하게 들려주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판교극장의 객석은 빈자리 없이 가득 찼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열리는 작은 행사에 30명이 넘는 청중이 모이리라고는 쉽게 예상하지 못했다. 한 시대를 풍미하고, 누군가의 청춘에 지울 수 없는 이정표를 남긴 거장의 존재를 그렇게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영화 하나가 누군가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꾼 사건이었듯, 작은 공간들이 과거의 기억을 다시 꺼내놓을 때 세대 간의 대화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지방의 작은 공간 곳곳마다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관객이 호흡할 수 있는 자리가 상시 마련되면 좋겠다. 과거의 예술을 매개로 세대가 대화하고 소통할 때, 미래의 문화 역시 예감할 수 있을 것이다. 기억의 공유 공간과 네트워크가 전국 도처에서 더 많이 생겨나기를 기대해본다.
김봉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