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차력쇼’ 1인극 두 작품 무대에
배우의 카리스마와 연기력으로 무대를 이끄는 1인극 두 작품이 관객을 만난다. 연극 <플리백>의 김주연. (아래) <나는 나의 아내다>에서 1인 35역을 연기하는 백석광. 브러쉬씨어터·두산아트센터 제공
드라마화 후 국내 초연 ‘플리백’
김히어라·김주연·김규남 3인3색 무대
성적 농담·파격 유머로 털어놓는 속내
무대 위에는 오직 한 사람뿐이다. 화려한 세트도, 대사를 주고받을 상대 배우도 없다. 오직 한 명의 배우가 관객을 웃기고, 긴장시키고, 숨죽이게 만든다.
배우의 역량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두 편의 1인극이 잇달아 무대에 올랐다. 지난달 19일 개막한 연극 <플리백>과 24일 막을 올린 <나는 나의 아내다>다. 두 작품은 모두 1인극이라는 공통점을 갖지만 접근 방식은 정반대다. <플리백>이 한 인물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심리극이라면, <나는 나의 아내다>는 한 배우가 수십 명의 인물을 넘나들며 거대한 시대사를 직조하는 서사극에 가깝다.
영국 극작가 피비 월러브리지의 출세작인 <플리백>은 국내 연극 팬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작품이다. 2013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신작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적인 ‘문제작’으로 떠올랐고 이후 BBC 드라마로 제작돼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번 공연은 국내 초연으로, 배우 김히어라·김주연·김규남이 번갈아 주인공을 맡았다.
주인공 플리백은 솔직하다 못해 위험할 정도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겉보기에는 거침없고 유쾌해 보이지만 가족과의 갈등, 친구의 죽음이 남긴 죄책감, 사랑에 대한 결핍과 자기혐오를 농담과 독설 뒤에 감춘 채 살아간다. 그는 관객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걸고, 민망한 속내까지 숨김없이 털어놓는다. 주인공 이름인 플리백은 영어권에서 ‘지저분한 사람’ ‘문제투성이’를 뜻한다.
<나는 나의 아내다>에서 1인 35역을 연기하는 백석광. 두산아트센터 제공
퓰리처상 수상 ‘나는 나의 아내다’
나치와 사회주의 거친 성소수자의 삶
지현준·백석광, 연기만으로 35명 표현
류주연 연출은 개막을 앞두고 열린 프레스콜에서 “솔직함”을 작품의 매력으로 꼽았다. 성적 농담과 파격적인 유머로 가득한 여성 1인극. 한국 관객들에게 다소 낯설 수 있는 설정이지만, 류 연출은 “아주 깊은 속내의 진실함까지 드러낼 수 있을 때 진짜를 만날 수 있는 것 같다”며 “한국적으로 바꾸기보다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주인공을 맡은 각 배우의 개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음향, 조명, 무대 세트 등이 세 버전으로 꾸며졌다. 3인 3색의 플리백을 감상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될 듯하다. 김히어라·김주연·김규남은 “관객들이 플리백이라는 인물을 통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실수와 상처, 자기혐오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두산아트센터가 선보이는 <나는 나의 아내다>는 또 다른 의미의 연기 ‘차력쇼’다. 미국 극작가 더그 라이트의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실존 인물인 샤로테 폰 말스도르프의 삶을 바탕으로 한 모노드라마다. 동베를린 출신의 성소수자로 살아남은 샤로테의 삶과, 나치와 사회주의 체제를 모두 통과한 격동의 현대사가 한 인물의 기억을 통해 펼쳐진다.
압도적인 것은 배우가 감당해야 하는 역할의 규모다. 주인공은 극중에서 35명의 인물을 연기한다. 샤로테와 그를 인터뷰하는 더그 라이트를 비롯해 그들의 친구와 가족, 나치 장교, 이웃 등 서로 다른 연령과 성별, 성격의 인물을 쉼 없이 넘나들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1인 35역은 단순한 연극적 장치를 넘어 한 인간 안에 공존하는 수많은 정체성을 드러내는 예술적 장치로 설득력을 얻는다.
생물학적 남성이었으나 여성 정체성을 가진 트랜스젠더, 억압의 시대에서 자유를 갈망한 동시에 나치의 스파이로 의심받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인물을 하나의 고정된 존재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며 우리가 타인을 판단하는 기준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되묻게 한다.
관객을 납득시키는 건 배우의 연기다. 지현준과 백석광이 미세한 표정 변화와 말투, 걸음걸이와 자세만으로 시시각각 인물을 갈아입으며 120분간 무대를 빈틈없이 채운다. 다소 낯설고 난해해 보이는 초반부를 지나 겹겹이 쌓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무대에 빠져들게 된다. 2013년 두산인문극장을 통해 초연된 후 12년 만에 ‘신분류학’ 프로그램으로 관객을 만난다.
<플리백>은 9월6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나는 나의 아내다>는 이달 1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