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은 높은 혈당이 지속되면서 몸 곳곳의 합병증 위험을 높이므로 조기에 치료와 관리가 필요하다. 게티이미지
‘살 빼는 약’으로 알려진 ‘위고비’에겐 쌍둥이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같은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 성분의 ‘오젬픽’이라는 약이죠. 식사 후 장에서 분비돼 뇌에 포만감을 알리고 혈당을 낮추는 역할을 하는 호르몬인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와 비슷한 작용을 할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먼저 승인을 받은 것은 당뇨병 치료제로 쓰인 오젬픽입니다. 이후 이 약이 체중 감량에도 효과를 보이면서 용량을 더 늘려 비만 치료제 위고비로도 나온 것이죠.
오젬픽 같은 GLP-1 계열 당뇨병 치료제는 국내에서도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국내 30세 이상 당뇨병 환자가 600만명을 넘었고, 합병증 예방과 장기적인 예후 개선을 위해 일찍부터 당뇨병을 집중 치료해야 할 중요성도 커지는 상황이 반영됐습니다. 의료계의 최신 당뇨병 진료지침도 심부전, 만성 콩팥병, 죽상경화성 심혈관질환 등 동반질환에 따라 GLP-1 계열 치료제를 우선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다만 2011년 만들어진 ‘당뇨병 약제 보험급여 일반원칙’이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양한 치료제를 쓸 수 있게 된 환경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지난 1일 대한당뇨병학회와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연 ‘당뇨병 환자 치료 기회 확대 위한 신약 처방 지침 개정 심포지엄’에선 의료현장에서 당뇨병 치료 및 관련 연구를 담당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최신 진료지침을 반영해 건강보험의 적용 기준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특히 15년 전 마련된 기준에 따르면 먹는 약으로 ‘메트포민’만 우선 사용하고 이후에 다른 약제와 병용하거나 인슐린 치료를 단계적으로 추가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런 원칙이 너무 경직돼 있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조영민 대한당뇨병학회 진료지침이사(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메트포민은 안전하고 경제적인 약제지만, 환자의 동반질환과 임상적 위험에 따라 SGLT2 억제제나 GLP-1 제제 등 예후 개선 효과가 입증된 약제를 우선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늘고 있다”면서 “모든 환자에게 메트포민을 일률적으로 우선 적용하는 것은 환자 중심 접근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학회의 최신 진료지침은 당뇨병 치료에 있어 혈당 수치 조절에만 중점을 두지 말고 당뇨병의 다양한 동반질환에 맞게 효과가 입증된 여러 약제를 우선 쓰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조 이사는 “당뇨병 치료는 혈당 조절, 체중 조절, 저혈당 예방, 합병증 예방 및 치료, 부작용, 비용, 환자의 선호와 치료 지속 가능성 등을 함께 고려하는 종합적 전략으로 발전하고 있다”면서 “다만 새로운 치료제와 임상 근거가 빠르게 축적되는 데 비해, 국내 약제 승인과 보험급여 기준은 답보 상태여서 최신 근거에 기반한 치료가 실제 환자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건강보험 적용 기준이 일종의 장벽처럼 작용해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 처방이 이뤄지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하나의 약만 쓰지 않고 다양한 치료제를 함께 쓰는 것이 더 합리적인 상황에서도 건강보험 기준의 제약 때문에 환자 상태에 맞춰 조기부터 치료 효과를 높이는 방법을 쓰기 어려울 때가 많다는 얘기죠.
김종화 대한당뇨병학회 보험이사(부천세종병원 내분비내과 과장)는 “현행 보험급여 일반원칙은 메트포민을 초기 치료제로 두고 특정 약제 조합을 제한하며, GLP-1 제제 사용에도 선행요법이나 체질량지수 등 요건을 두고 있어 실제 임상에서 다양한 환자 특성을 반영하기 어렵다”면서 “결국 ‘무엇이 가장 적절한 약제인가’보다 ‘무엇이 급여가 되는가’가 처방의 기준이 되는 상황이 생긴다”고 지적했습니다.
권혁상 대한당뇨병학회 학술이사(여의도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도 “여러 주요 임상 연구들을 통해 SGLT2 억제제와 GLP-1 제제가 심부전·만성 콩팥질환자에게 꼭 필요한 약제가 되었고, 체중 감량 효과까지 입증되면서 2형 당뇨병은 완치의 영역까지 넘보는 만성질환이 됐다”면서 “이제는 충분한 임상 근거를 갖춘 이들 치료제를 당뇨병 환자에게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적용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고요.
전문가들은 1차 사용 약제 기준을 유연하게 적용하고 당뇨병 환자의 동반질환에 따라 효과가 입증된 최신 치료제도 적극적으로 쓸 수 있게 건강보험 급여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실제 당뇨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도 같은 의견을 보였고요. 같은 성분의 비만 치료제는 비만이나 과체중이 아닌 사람도 쉽게 처방받아 쓰고 있는데, 정작 치료를 위해 약이 필요한 당뇨병 환자들에겐 건강보험 적용이 까다로운 게 현실이니까요.
염동식 당뇨와건강 환우회 회장은 “특히 GLP-1 제제는 오남용 우려 등을 이유로 별도의 까다로운 급여 기준이 적용돼 정작 당뇨병 환자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급여 기준 완화를 통해 꼭 필요한 환자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