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보베르데의 시드니 로페스 카브랄(가운데)이 4일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32강전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연장전 2-2 동점골을 넣은 뒤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끝내 기적은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세계 챔피언을 상대로 두 번이나 따라붙었고, 승부차기까지 불과 10여 분을 남겨놓을 때까지 버텼다. 사상 처음 월드컵 본선에 오른 카보베르데가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졌지만 이겼다.
카보베르데는 지난 4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스타디움에서 열린 북중미 월드컵 32강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에 연장 접전 끝에 2-3으로 졌다. 정규시간 1-1로 맞선 뒤 연장전에서도 한 차례 더 동점을 만들었지만, 연장 후반 자책골로 졌다. 카보베르데는 아르헨티나에 두 차례 리드를 허용하고도 두 번 모두 따라붙었다. 로이터통신은 “아르헨티나가 카보베르데의 강한 저항에 밀려 벼랑 끝까지 몰렸고, 결국 연장전 자책골이 필요했다”고 전했다.
카보베르데는 이번에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는 유럽 챔피언 스페인과 0-0으로 비겼다. 이어 우루과이를 상대로 월드컵 첫 골을 넣었고, 조별리그 3경기를 모두 비기며 32강에 올랐다. 이번 대회 월드컵 데뷔국 가운데 토너먼트에 오른 팀도 카보베르데뿐이었다.
카보베르데 시드니 로페스 카브랄(13번)이 4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가든스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32강전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2-2 동점골을 넣은 뒤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가운데는 이를 바라보는 아르헨티나 리오넬 메시. AP연합뉴스
스페인전에서는 40세 골키퍼 보지냐가 7개 슈팅을 막아냈다. 경기 종료 뒤 눈물을 흘리며 카보베르데 국기를 들어 올린 그의 모습은 전 세계로 퍼졌다. 아르헨티나전에서도 8세이브를 기록했다. 이번 대회 4경기에서 기록한 선방은 18개였다. 보지냐는 포르투갈 2부리그 샤베스와 계약이 끝난 뒤 현재 소속팀이 없다. 세계적인 클럽 주전 골키퍼가 아니라 무소속 40세 골키퍼가 월드컵에서 스페인과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잇따라 선방쇼를 펼친 것이다. 스코틀랜드 국가대표 출신 제임스 맥패든 BBC 해설위원은 “카보베르데는 졌지만 이겼다”며 “용기와 단결, 믿음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영국 가디언은 “유럽 2부리그 등을 중심으로 뛰는 디아스포라 선수들이 주축이 된 팀이 세계 챔피언과 대등하게 맞섰다”고 높게 평가했다.
카보베르데 위치. 위키피디아
카보베르데는 아프리카 서쪽 대서양에 흩어진 10개 섬으로 이뤄진 국가다. 국토 면적은 약 4000㎢, 인구는 50만 명 안팎이다. 역대 월드컵 본선 진출국 중 가장 규모가 작다. 국내 인구보다 해외에 거주하는 카보베르데계 공동체 존재감이 크고, 대표팀 역시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아일랜드 등 해외에서 성장한 선수들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대표팀 수비수 로베르토 ‘피코’ 로페스는 “이번 월드컵에서 나온 가장 좋은 일 가운데 하나는 이제 아무도 카보베르데가 지도 어디에 있느냐고 묻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도 위에 올려놓았다”고 말했다. 카보베르데 페드루 레이탕 브리투 감독은 “우리는 작은 나라일지 모르지만 세계 최고 팀들과 경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세계 챔피언을 상대로 두 차례 동점을 만든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라고 자평했다.
카보베르데는 단순히 수비만하다 탈락한 약체가 아니었다. 뻥축구는 없었다. 또 파울로 상대를 차단하려는 장면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카보베르데는 자기 진영에 있든, 상대 진영에 있든, 끝까지 패싱 플레이로, 빌드업으로 상대 진영을 뚫으려고 했다. 카보베르데의 돌풍은 48개국 확대 체제를 둘러싼 논쟁에도 영향을 미쳤다. 경기 수준이 떨어지고 일방적인 승부가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 속에서 카보베르데는 출전국 확대가 아니면 보기 어려웠을 작은 나라의 경쟁력을 보여줬다. 대진표에서는 카보베르데가 사라졌지만 북중미 월드컵에서 가장 오래 기억될 팀 가운데 하나가 된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