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건국 250주년을 맞아 4일(현지시간) 수도 워싱턴의 내셔널몰에서 86만발의 폭죽이 터지고 있다. EPA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미국 건국 2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86만발의 폭죽이 수도 워싱턴의 하늘을 수놓았다. 세계 기네스북 기록을 깬 대규모 불꽃놀이와 웅장한 에어쇼로 그 어느 해보다 화려하게 기획된 독립기념일이었다. 그러나 찌는 듯한 폭염에 뇌우·태풍 예보까지 겹치면서 이날 행사는 곳곳에서 차질을 빚었다. 마치 ‘위대한 미국’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분열과 전쟁으로 고전하고 있는 미국의 현주소를 보는 듯했다.
이날 워싱턴의 기온이 38도까지 치솟자 행사 주최 측은 독립기념일 퍼레이드를 취소했다.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는 국립문서기록관리청 행사도 급히 실내로 장소를 옮겼다. 불꽃놀이가 열리는 내셔널몰에선 보안 검색 순서를 기다리다 일사병으로 쓰러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시민들은 폭염 속에서도 저마다 성조기를 그려 넣은 의상을 입고 독립기념일을 축하했다. 그러나 밤에는 뇌우·태풍 경보가 내려지면서 대피 명령까지 떨어졌다. 비가 그친 후 우여곡절 끝에 행사가 재개되긴 했지만, 불꽃놀이는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이 끝난 후 자정이 돼서야 시작됐다. 세계 기네스북 기록을 경신한 86만발의 폭죽이 40분 가까이 끊임없이 터졌다.
4일(현지시간) 미국 건국 250주년을 맞아 성조기로 만든 옷을 입고 나온 미국 시민들. AP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강풍이 부는 미 독립기념일 행사장. AFP연합뉴스
올해 행사가 파행을 빚게 된 더 큰 원인은 악천후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건국 250주년 ‘사유화’ 논란이었다. 250주년 기념행사는 2016년 미 연방 의회가 만든 초당적 위원회인 ‘아메리카250’이 10년 동안 준비해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과 동시에 행정명령으로 ‘프리덤250’을 출범시킨 후 예산과 권한을 몰아줬다. 250주년 독립기념일의 역사적 의미는 퇴색되고, 역대 최대 규모의 불꽃놀이와 에어쇼 등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화려한 볼거리가 그 자리를 메웠다.
연방 정부가 주도하는 250주년 기념 조형물과 공공 자료에선 다문화·소수자·소수인종 내용이 대거 축소되거나 삭제됐다. 미국의 건국정신보다 트럼프 대통령을 기념하는 이벤트도 잇따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건국 250주년을 맞아 본인의 서명이 들어간 100달러짜리 지폐를 소셜미디어에 공개했다. 앞서 그는 자신의 초상화와 서명을 새긴 ‘한정판 여권’을 출시하기도 했다.
정치적 갈등이 있더라도 독립기념 행사만큼은 건국의 의미를 되새기는 단합의 기회로 만들려 했던 역대 정부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행사를 대놓고 이념 투쟁의 장으로 만들었다. 그는 이날 내셔널몰에서 열린 독립기념 행사 연설에서 진보주의자들을 ‘공산주의’로 낙인찍었다. 그는 “이 나라는 공산주의자들을 원하지 않는다”며 “우리 군인들이 전 세계 전장에서 공산주의와 싸웠는데, 그 위협이 다시 미국 본토에서 고개를 드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 그런 일이 일어나게 두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또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을 설파하며 선거의 신뢰성을 훼손했다. 그는 자신이 추진하는 선거법 개정안의 통과를 촉구하면서 “모든 유권자가 시민권을 증명하고, 우편투표가 없어져야 선거 부정행위가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역대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진 미 사우스다코타주 러시모어산을 방문했을 때도 민주당 내에서 부상하는 민주사회주의를 ‘공산주의’로 규정하며 통합보다는 분열과 공격을 시도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예외주의’를 지키기 위해 미국 정신을 말살하려는 자들로부터 조국의 정체성을 되찾겠다”면서 반이민 정서를 부채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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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미국 예외주의’를 다양성에서 찾는 연설을 했던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과 비교됐다. 민주사회주의자인 맘다니 시장은 “미국 예외주의의 ‘아이러니’는 이 나라의 역사가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전혀 예외적이지 않다는 말을 들은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쓰였다는 점”이라고 말해 미국은 이민자들이 일군 나라임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분열적 연설은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백인우월주의단체인 ‘패트리엇 프론트’ 회원 수백명은 이날 인종차별의 상징인 남부 연합기를 들고 국회의사당으로 행진하면서 “미국을 되찾자. 앵글로색슨 혈통의 독립을 쟁취하자”라고 외쳤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로이터통신이 지난 6월 여론조사업체 입소스와 공동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5명 중 1명은 올해 250주년 기념행사에 참여할 의지가 없다고 답했다. 또 5명 중 2명은 미국이 “극단적인 갈등으로 앞으로 250년을 더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