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올해 4월30일 미국대사관이 보이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미국, 쿠팡 부당로비 따른 내정간섭 중단해야”를 주제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미국 연방 하원 법제사법위원회에 이어 백악관이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둘러싼 한국 정부의 대응이 “차별적으로 표적 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미 의회·행정부가 쿠팡 측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인 뒤 입장을 표명하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7~8일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만나 쿠팡 문제에 관한 설명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5일 정부 등에 따르면 미 백악관은 지난 2일(현지시간) 언론 질의에 “미 행정부는 한국 정부가 미국 기술기업을 차별적으로 표적 삼고 있는 상황에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어떤 합리적 기준으로 보더라도 쿠팡은 이재명 정부에 의해 표적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일 미 하원 법사위는 ‘경쟁 차단: 미국 소유 기업에 대한 한국의 차별적 공격’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공개해 “한국 정부가 수십년간 미국인 소유 기업을 표적으로 삼아왔고, 차별적 대우는 최근 몇 년 사이 더 심해졌다”고 주장했다.
미 행정부와 의회는 쿠팡을 상대로 한 한국 정부·국회의 조치에 반발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정보보호위는 지난달 쿠팡이 3750만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하고 이용자 온라인 기록을 무단 수집한 점을 인정해 624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과 과로사 의혹 등 노동환경 실태 파악을 위한 청문회를 열었다.
정부는 쿠팡 측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인 미 의회 보고서와 미 행정부의 입장 표명에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정부는 주미한국대사관 등 여러 경로로 전달한 정부 설명이 미국 입장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본다. 미 의회나 행정부 측이 올해 상반기 한국 정부 인사와 만나 쿠팡 문제를 논의할 때 “한국 정부를 이해한다”는 입장을 표한 일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는 자국 기업을 보호하려는 미국 의회·행정부 분위기를 감안하면 쿠팡 문제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다른 국가의 미국 기업 규제에 거세게 반발하는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자국 빅테크 기업의 규제 입법을 주도한 유럽연합(EU)의 전 고위직과 시민사회 인사 5명의 입국을 금지하기도 했다.
앞으로 쿠팡 문제와 한·미 안보 분야 협의가 재차 연계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국 측은 쿠팡 문제를 들어 지난해 10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핵추진잠수함 도입 등 안보 사안 논의를 6개월가량 지연했다. 미 의회·행정부가 잇따라 강경한 입장을 내놓으면서 양국 간 논의가 지연됐던 올해 초와 비슷한 상황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3일 “(앞서) 제가 이 자리에서 쿠팡 문제가 안보 문제와 무관치 않다고 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고위급 인사 간 소통을 통해 쿠팡 문제를 설명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대통령이 7~8일 튀르키예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면 쿠팡 문제에 관한 정부의 입장을 전달할 가능성이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오는 23일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을 만나 설득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